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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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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브란스(L.H. Severance, 1838-1913)

세브란스
세브란스병원 설립 기금 기부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출신인 세브란스는 석유왕 록펠러의 평생동업자로 석유사업, 소금, 유황, 철강업 등에 투자하여 큰 재산을 모은 부호이자 자선사업가. 1900년 뉴욕에서 열린 만국선교대회에서 에비슨의 '의료선교에서의 우의' 강연에 큰 감동을 받아 한국 서울에 현대식 종합병원을 기증했다. 서울역 맞은편에 세 워진 제중원의 새 병원은 기증자를 기리기 위하여 세브란스 기념병원으로 명명됐다. 후손이 설립한 재단을 통해 현재까지도 기부는 계속되고 있다.

김필순(1878-1919)

김필순
독립운동 위한 이상촌 건설에 투신한 세브란스의학교 1회 졸업생
1907년 7월 31일 대한제국 군대의 해산이 발표되고 일본군과 시가전에서 부상당한 군인들을 치료하면서, 턱없이 부족한 일손을 채우기 위해 남녀유별의 벽을 넘어 동생과 조카들을 데리고 와서 부상병들을 간호하게 했다.
세브란스의학교 제1회 졸업생이었던 김필순은 모교에 남아 후진 양성에 힘썼다. 한일합병 당시에는 신민회 회원으로 망명길에올라 중국간도에서 이상촌을 세우고 독립군을 양성 하여 우리나라 독립의 기틀을 닦았다.
중국 망명 시기의 김필순 (오른쪽 아래)

중국 망명 시기의 김필순 (오른쪽 아래)

김필순 선생 소개
1878년 6월 25일 황해도 장연군 출생
1895년 배재학당 입학
1899년 제중원에서 근무하던 셔록스의 통역 및 조수로 발탁
1908년 세브란스의학교 제1회 졸업
세브란스의학교 교수 취임
1910년 세브란스의학교 학감 취임
1911년 세브란스병원 외래 책임자 취임
12월 31일 중국 망명
1912년 중국 통화에서 이상촌 건설 운동 시작
1916년 8월 몽고 근처 치치하얼로 이동하여 이상촌 건설 운동 계속
1919년 9월 1일 사망

박서양(1885-1940)

박서양
신분의 벽 뛰어넘은 대의 독립운동가
백정의 아들로 태어나 세브란스의학교 제1회 졸업생이 된 박서양은 세브란스의학교에 교수로 부임해 처음에는 화학을, 나중에는 해부학 과 외과학을 가르쳤다.
하지만 1917년 세브란스의학교가 전문학교로 바뀌는 과정에서 박서양은 국경을 넘어 북간도로 떠났다. 그는 북간도에서 학교를 세우고 병원을 지었다.
박서양의 활동은 의료나 교육에 그치지 않았다. 박서양은 북간도 최대의 독립운동 조직인 대한국민회에서 군의로 활동했다.
그는 환자를 치료하는 소의에서 나라를 구하는 대의로서 역사적 책임을 성실히 감당했다.
세브란스병원에서의 수술 장면(중앙 왼쪽부터 허스트, 박서양, 에비슨)

세브란스병원에서의 수술 장면.
(중앙 왼쪽부터 허스트, 박서양, 에비슨)

박서양 선생 소개
1885년 1885년 9월 30일 서울 관자골에서 출생
1900년 1900년 제중원의학교 입학
1908년 1908년 세브란스의학교 제1회 졸업, 모교 교수 부임
1917년 1917년 북간도 연길현 국자가에 숭신학교 설립, 교장 취임
1921년 1921년 대한국민회 군사령부 군의
1940년 1940년 12월 15일 서울 수색에서 사망
2008년 2008년 8월 15일 건국포장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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