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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HOME 안에 인물열전 안에 1940년

세브란스학도대

이미지 없음
해방공간에서 귀한 동포들을 돕다
1945년 8월 15일, 한국은 해방되고, 나라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서울역에 앞에 위치한 세브란스의 학생들은 '세브란스학도대'를 만들어 귀환하는 동포들을 위한 구호사업에 주력했다. 진료활동뿐 아니라 식량과 의복을 공급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승차권을 마련해주 기 위해 서울역을 설득하여 '세브란스학도대' 의 도장이 찍힌 무임승차권을 발매했다. 또한, 서울역 앞에 있던 파출소를 맡아 치안과 질서를 유지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 서울역 앞에있던 세브란스 서울역 앞에있던 세브란스, 학도대는 서울역에 '세브란스 역전 구호소'를 만들고 구호부, 자위부, 청소부로 나뉘어 활동했다.
  • 해방 후 시가행진을 하는 세브란스 학생들 해방 후 시가행진을 하는 세브란스 학생들. 이들은 학도대를 조직해 서울역 인근에서 해방공간의 혼란 가운데 질서를 잡아갔다.

이영춘(1903-1980)

이영춘
민족의 건강과 한국의 농촌을 내다본 농촌 위생의 선각자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한 3년 정도 농촌에서 공의(公醫)로 활동 했다. 공의는 요즘으로 치면 공중보건의다. 산간벽지의 궁핍함은 상상 이 상이었고, 그는 거의 휴일 없이 녹초가 될 때까지 진료하며 생활했다. 이 영춘은 열악한 농촌의 의료 현실을 깨닫고, 1948년 , 농민들을 대상으로 예방과 치료라는 의학의 두 가지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농촌위생연구소 (이하 연구소)를 개소했다.
농촌위생연구소 낙성식 장면

농촌위생연구소 낙성식 장면

이영춘 선생 소개
1903년 10월 16일 평안남도 용강군에서 출생
1922년 평양고등보통학교 본과 졸업
1929년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졸업
1930년 황해도 평산군 공의 부임
1935년 구마모토 농장 자혜진료소 소장 부임
교토 제국대학 의학박사 학위 취득
1948년 7월 농촌위생연구소 설립
1980년 11월 25일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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