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인메뉴로 바로가기
콘텐츠 바로가기
하단메뉴로 바로가기



연혁

HOME 안에 사료관 안에 연세치의학박물관 안에 연혁

1876 - 1910 개항기

한국 근대 서구식 치의학의 도입

한국인들의 전통적인 구강병치료는 한의학이나 민간요법에 따른 것이었다. 개항(1876) 이후 미국과 일본을 통해 근대 치의학이 도입되었다. 미국의 의료선교사 알렌(H.N.Allen) 이 제중원(1885)에서 발치를 시작한 것이 한국근대치의학의 효시이다. 제중원 의학생들 도 274개 치아의 발치(1901)를 하여 한국치의학 교육의 모태가 되었다.그러나, 본격적인 치과 진료가 시작된 것은 일본인 치과의사 노다 오지(野田應治)가 인천 에 개업(1893)하고, 한국인 입치사가 등장(1907)하면서부터이다. 이로써 구강병만을 전문으로 치료하는 ‘치과의사’라는 직업이 소개되었다.

왼쪽, 치과용 폐달식 엔진 (1900)
오른쪽, 조선후기 가정에서 어머니가 딸의 치아를 뽑는 장면 (1903)

1910 - 1945 식민지기

세브란스연합의학교 한국최초의 치과학 교실 개설

함석태가 최초의 한국인 치과의사(1914)로 등록하였으나, 일제는 조선 내 치의학교 설립 이나 치과의사 시험에는 무관심하였다. 그러나 쉐프리(W.J.Scheifley)는 세브란스연합의 학교에 한국 최초의 치과학 교실을 개설(1915)하고 병원에 치과를 설치하여 장차 연세대 학교 치과대학 설립의 장을 열었다.
2대 치과과장 부츠(Dr.J.L.Boots)는 치과센터 건축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가 모금운동을 하여 마련한 기금으로 치과센터(1930)를 착공하였다. 이듬해 동양 최고 규모의 최신식 치과센터(1931.10.28)가 세브란스 병원 옆에 세워졌다. 3대 치과과장 맥안리스 (Dr.J.A.McAnlis,1921-1941)는 이유경, 정보라의 미국유학등 한국인 치과의사육성 및 진료,연구에 힘썼다.

왼쪽, 리터사 치과 진료 의자(1920)
오른쪽, 초대 치과과장 쉐프리
(Dr.W.Scheifley, 1915-1920)

1945 - 1953 형성기

한국현대치과의료원체계의 형성

해방 후 한국인 치과의사들은 자주적인 치과의료체계를 건설하기 위해 조선치과의사회를 창립(1945.12.9)하고 조선치계를 발간(1946.5.1)하였다. 미군정은 치무과를 신설 (1945.10.27)하고,치과기자재 및 금배급, 일본인 치과적산처리,치과의사 면허 및 자격 시험규정,경성치대의 국립서울대합병을 강행하였다. 대한민국정부 수립 후 조선치과의사 회는 대한치과의사회로 개칭(1949)하고 치의학과 치과의사의 지위향상을 위해 노력하던 중 한국전쟁을 맞게 된다. 세브란스 병원도 1?4후퇴(1951)를 계기로 경상남도 거제도로 내려가 구호민 병원을 열었고, 치과는 이동섭이 맡아 진료했다. 치과기자재의 품귀로 인해 보철 및 보존 기공장비는 낙후된 방식을 고수하였다.

왼쪽, 치과 기공용 망치와 모루
오른쪽, 군용 치과 진료 기구 세트

1945 - 발전기

한국현대치과의료체계의 발전

전후 군진치의학의 대두와 한국인 치과의사들의 해외유학을 통해 치과 전문과목별 학회가 발족하고 원심주조기(50년대 후반)와 고속에어터빈(60년대 중반)이 도입되면서 치과 진료기술의 눈부신 향상이 있었다. 세브란스 병원 치과는 구강외과학의 맥인 (J.W.McInnes ,1956), 교정학의 김귀선(1958), 치주학의 김락희(1960)등이 현대적인 시술을 선도하였다. 또 의학기술과 치과위생사과정을 신설(1965)하여, 치과위생사 면허1호를 탄생시켰다. 한국사회의 발전에 따라 양질의 치과의사 배출이 절실해지자 연세대학교는 문교부로부터 치과대학 설립인가를 받아(1967.12.4) 오늘에 이르고 있다.

왼쪽, 미국산 치과 기구함 (1951)
오른쪽, 대한치과보철학회 정회원 증서 (1963)

콘텐츠 처음으로 이동


네크워크 링크안내/사이트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