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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8월 31일 말씀

등록일자
2011-08-31
  • 2011년 8월 31일 채플 말씀

    * 영상오류로 음성만 제공됩니다.
    <세브란스 직원예배/ 2011.8.31. 권수영 목사(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100점 짜리 인생을 사는 법

    어느 장관이 공무원들에게 100점짜리 인생을 사는 비결이 무엇인지 질문을 했습니다. 영어 알파벳을 a부터 z까지 순서대로 번호를 매겨서 단어조합이 100점이 되는 영어단어를 찾아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즉, a는 1이고, z는 26이 되겠지요. 무엇보다 열심히 일하는 게 100점짜리 인생의 비결이겠다고 여겨 hard work을 계산해보니 98점, 지식 knowledge는 96점, 그리고 재력, money는 72점에 그쳤습니다. 장관의 의도된 단어는 바로 바른 태도와 긍정적인 자세, 즉 attitude가 바로 100점이었습니다. 그러자 한 직원이 슬며시 stress도 계산해 보니 100점이 나온다고 반문했습니다. 장관은 그만 의도된 훈화가 전달되지 않아 당황해 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만 생각해 보면 인생의 스트레스도 100점짜리 인생에 꼭 필요한 그 무엇은 아닐까요? 스트레스와 갈등은 누구나 싫어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이 어쩔 수 없이 맞이하게 되는 스트레스가 있기에 우리는 하늘을 올려다 보고,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하게 됩니다. 요즘 직장생활을 하는 직장인들에게 스트레스의 내용을 묻는 질문을 하면 예상 밖의 대답을 합니다. 과중한 업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아니라, 옆의 동료와 상사들 사이에서 생기는 관계의 스트레스가 가장 큰 스트레스라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두 세 사람만 모여도 우리는 의견 차이가 생기고 작은 분쟁이 생길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신약성경 마태복음 18장 20절에 보면 소형교회 목사님들이 가장 좋아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두 세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 본문이 15절부터 시작하는 내용이고, 두 세사람이 분쟁이나 갈등 중에 있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말씀입니다. “두 세사람”의 원칙의 재미있는 사실은 두세사람이 모이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것과 또 역설적으로 그 안에는 늘 의견차와 분쟁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두 세사람” 원칙의 딜레마는 정치에도 기업체에도, 그리고 병원에도 적용되며, 아마 모든 삶의 영역에 적용될 것입니다.
    저는 성서가 주는 “두 세사람 원칙”의 지혜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첫 번째 원칙은 바로 “선제권”을 가지는 것입니다. 즉, 먼저 행동을 취하라는 것입니다. 15절을 보면 “네 형제와 너와 의견을 달리하여 분쟁하면”이라고 나와 있지 않고,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이라고 시작하는 것을 유의해야 합니다. 여기서 바로 나는 분명히 “피해자”입니다. 상대방은 내게 거짓말과 모욕을, 육체적, 정신적 손상을 입힌 상대이므로 그 사람이 내게 오면 왔지, 왜 내가 가야하나 하고 절대 먼저 다가가지 않습니다. 하지만 성서는 “가서” 상대하여 권고하라고 적고 있습니다. 세 단계가 소개됩니다. 처음에는 단 둘이, 다음에는 한 두사람을 더 데리고,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교회에 알려서 해결하라고 말입니다. 이같이 순서를 말씀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처음부터 당사자 이외의 사람들에게 알려 두 사람의 관계가 회복 불능의 상태로 가는 일을 막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내가 먼저 행동을 취하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분쟁에서 이길 생각만 있지 관계를 지속할 마음이 좀처럼 없기 때문입니다. 분쟁이 있으면, 내가 그 사람과 상대를 안하면 그만이지 나는 아쉬울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옛날 우리 선조들은 정혼제도, 부모님들이 미리 정한 결혼에 의하여 결혼을 했습니다. 이제 현대에는 이러한 제도는 비인간적이고 잔인한 제도처럼 여겨져 정혼제도는 없어져왔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통계에 의하면 아직도 정혼제도에 의하여 결혼을 하는 문화권에서는 다른 문화권보다 훨씬 이혼율이 낮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왜일까요? 제 소견은 연애는 상대방의 매력에 끌려 시작되고 연애결혼은 이 매력에 의해 관계가 지탱됩니다. 그러나 매력, 특히 육체적 매력은 시간이 가면서 변하기 마련입니다. 심지어는 성격도 변화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한편 정혼에 있어서 사람들은 상대방의 매력에 그들의 관계를 설정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애초부터 “내가 누구와 결혼할 것인가?”라는 질문보다 “주어진 이 배우자와 내가 어떤 결혼관계를 만들어갈 것인가?”이라는 질문을 묻습니다. 그래서 분쟁시, “누가 옳은가?”를 따지지 않고 “우리의 관계를 위해 무엇이 최선인가”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명하신 방법도 바로 이러한 “관계”를 최우선으로 하는 것입니다. 관계를 유지하고 살리기 위한 유일한 길은 바로 내가 먼저 다가가는 일입니다. 우리는 늘 죄인인 인간을 찾아 먼저 내려오신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대부분 우리는 정혼이 아니라, 중매 혹은 연애결혼하셨을터인데, 정혼하지 않은 우리가 행복한 결혼관계를 유지 하는 법은 무엇일까요? Psychology Today라는 잡지에 행복한 부부들이 서로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한 연구가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180명의 행복한 부부에게 자기 자신과 배우자들에 관한, 또 행복한 부부관계에 관한 여러 질문을 했습니다. 일반 상식으로 언제 부부관계가 가장 원활할까 묻는다면, 배우자들이 서로의 장점과 단점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을 때라고 가정할 것입니다만, 연구자들은 정반대의 결과를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행복한 부부는 서로를 볼 때 “장미빛 글래스”를 쓰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이름 하여 “장미빛 글래스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즉, 배우자들을 바라 볼 때 실지로 배우자들이 자신들을 생각하는 것 보다 더 좋게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가장 행복한 관계에는 심리학적인 표현으로 상호 환상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사실과 다르게 보는 것이 보다 현명하고, 행복감을 가져다준다는 역설입니다.
    저는 행복한 인생을 살기 위해서도 바로 이러한 글래스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볼 때 실지 보다 더 좋게 보아주고 인정해주는 “장미빛 글래스”가 필요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보아야하는 방식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가정에서, 직장에서, 그리고 병원에서 서로를 보아야 하는 방식입니다. 이 “장미빛 글래스”는 바로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 즉 우리들을 보시는 방식입니다. 무엇보다 우리보다 먼저 우리에게 다가오시며, 그의 독생자를 보내 주신 하나님, 그 하나님의 “장미빛 글래스”를 있었기에, 그 글래스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되는 축복을 얻었습니다. 우리와 죄된 모습과 상관없이 말입니다. 그의 장밋빛은 바로 그의 독생자의 보혈의 색깔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기독교병원인 의료원에 근무하시는 모두에게는 “보혈빛 글래스 효과”가 필요한지도 모릅니다.
    100점짜리 인생을 사는 법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사는 가정, 일터, 그리고 사회 곳곳에 우리가 갈등할 무수히 많은 이들이 있습니다. 가족들과 일터의 동료들, 우리의 이웃들, 다들 우리와 갈등을 가질 수 있는 이들입니다. 그러나 갈등을 두려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갈등을 모른 척하면서 피하거나 갈등을 무리하게 해결하려고 해서는 오히려 갈등은 더욱 증폭될지도 모릅니다. 아무쪼록 오늘부터 잘잘못을 가리는 데에만 집중하고 내안에 높이 쌓아두었던 마음의 벽을 허물고 하나님이 주신 보혈빛의 “장미빛 글래스”를 모두 쓰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서로에게 먼저 다가가 우리 연세의료원 병동마다에 그리스도의 사랑의 뿌리를 내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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