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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5일 말씀

등록일자
2011-10-06
  • 2011년 10월 5일 채플 말씀 영상

    <세브란스 직원예배/ 2011.10.5 한인철(교목실장)>

    밀알 하나의 힘
    (요한복음 12:24)

    I. 들어가는 말
    오늘 설교자가 예장 통합 사무총장이신 조성기 목사님으로 이미 고지되었는데, 제가 갑자기 설교자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혹 전해 들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연세대 신과대학 교수를 역임하시고, 장로회신학대학교 총장과 예장 통합 총회장을 지내신, 이종성 목사님께서 엊그제 갑자기 돌아가시게 되어, 오늘 아침 예장 통합 교단장으로 장례식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설교하시기로 한 조성기 목사님께서 예장 통합 사무총장으로 장례를 주관하셔야 해서, 오늘 불가피하게 오시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 점 널리 양해가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II. 왜 나만 이렇게 고생해야 하는가?
    여러분들 혹 의료원 안에서 일하시면서, 이러한 회의가 생겼던 적은 없으신지요? 나는 나름대로 의료원의 발전과 변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나의 이런 노력이 실제로 의료원 안에 어떤 차이와 성장을 가져오고 있는 것일까? 나는 나름대로 생명을 살리는 가장 고귀한 일에 헌신하겠다고 의료인이 되었는데, 과연 내가 이 일을 지금 잘 해내고 있는 것일까? 더군다나, 의료원을 지금보다 더 나아지게 하고, 생명을 더 많이 살리는 일에, 과연 나 한 사람의 노력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일까?
    물론 모든 일이 잘 되고, 그 결과가 눈에 보일 때는, 이런 회의가 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일이란 그렇게 항상 낙관적이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의료원 안에서 일을 하시다 보면, 예측하지 못한, 감당하기 어려운 시행착오들을 겪을 때도 있으실 것이고, 그에 따라 그 미래의 결과를 장담하기 힘들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한참 열심히 일하다가도, 우리 자신도 모르게 갑자기 힘이 빠지고, 자신이 하는 일에 회의가 드는 때가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의료원에 온지 얼마 안 되서, 의료원 안에서는 이런 회의가 든 적이 아직 없습니다만, 다른 곳에서는 간혹, 아니 정직하게 말씀 드리면, 자주 회의가 들고는 합니다. 과연 내가 목사로서 사람과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에 얼마나 의미있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실제로 어떤 변화가 일어나기는 하는 것일까? 오늘은 이런 물음을 갖고, 예수께서 말씀하신 밀알의 비유를 통해 여러분과 제가 함께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III. 어느 경찰의 이야기
    꽤 오래 전, 촌지 관행이 일반화되었던 시절, 한 경찰에 관한 드라마 속 이야기입니다. 이 경찰은 자기 관할 구역 주민들을 지성으로 보살피는, 문자 그대로 민중의 지팡이였습니다. 그는 평소 관할 지역의 무의탁 노인들이나 소년소녀 가장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지성으로 보살펴 주었고, 월급을 타면 일부를 떼어, 밀가루 포대를 사다가 나누어 주고는 했습니다.
    우리의 생각 같아서는 청룡봉사상이라도 주어 그 삶을 치하해야 할 듯싶지만, 사실 누구도 그를 추천하지는 않았습니다. 촌지를 받아 상납하는 일이 없으니/ 윗사람이 좋아할 리도 없었고, 그런 돈으로 뇌물을 쓰는 일이 없으니/ 승진이 잘 될 턱도 없었습니다.
    문제는, 단순히 이러한 외부적인 상황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이 경찰의 행태를 그런대로 참아줄 수 있었는데, 정작 참을 수 없었던 것은 그의 가족이었습니다. 다른 경찰들은 일찍이 집도 장만하고 재산도 증식하여 꽤나 잘 살았는데, 이 가족은 잘 사는 것은커녕 매일매일 어려운 살림을 몸으로 견디어 내야만 했습니다. 박봉의 봉급조차도 다 집에 갖다 주는 것이 아니라, 무의탁 노인이나 소년소녀 가장에게 일부가 돌아갔으니, 살림살이는 구차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아내는 그런대로 참았습니다. 자신이 선택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를 선택한 적 없는 딸은 달랐습니다. 참다못한 중학생 딸이 어느 날 아버지와 마주 앉았습니다. 딸이 아버지에게 말합니다: “아빠. 저는 아빠를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해요. 그리고 아빠같은 경찰이 이 세상에 많이 나와야, 이 세상이 점점 좋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아빠, 왜 그 경찰이 하필 우리 아빠여야해요?”
    저는 이 대목에서 울컥 했습니다. 제가 마치 딸인 듯, 그 복잡한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습니다. 드라마 안에 나오는 경찰이지만, 저는 이러한 경찰이, 아니 이 경찰과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대한민국 안에 분명히 있다고 믿습니다. 그것도 많이 있다고 믿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경찰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혹 이 분이 세상물정 몰라서 그렇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시지는 않는지요? 그렇다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그러나 이 분은 당시 경찰의 세계 혹은 경찰과 관련된 주변의 세계가 어떠하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바로 그 한가운데에서 그렇게 살아 내었습니다.
    혹자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한 사람이 그렇게 산들, 당사자와 그 가족만 힘들고 피곤하지, 세상에 무슨 변화가 있겠는가? 아마도 당장은 그 말이 맞는지도 모릅니다. 사실 이 경찰이 그렇게 살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그렇게 살면, 세상이 곧 좋아질 것이라는 순진한 기대 때문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가 그렇게 살 수 있었던 것은, 그렇게 사는 것이 올바른 삶이라고 하는 그의 내적인 확신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 드라마를 보는 제 3자로서 이렇게 믿습니다: “이 한 사람의 삶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다. 그 분의 삶은, 누가 알아주든 안 알아주든, 지금의 대한민국을 이룩해낸 하나의 밀알과 같은 존재이다. 만약 오늘의 대한민국이 촌지 문화가 많이 사라진 살만한 세상이 되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바로 이 분과 같은 경찰이 대한민국 어느 모퉁이에선가 그렇게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경찰의 딸도 그것은 믿었습니다. 딸도 아버지같은 경찰이 있어야 세상이 좋아질 것이라고 믿었지만, 그 경찰이 다름 아닌 자기 아버지였다는 사실이 싫었을 뿐입니다. 아니 싫었다기 보다는 감당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저는 이 딸은 드라마 속에 비쳐진 우리 자신의 모습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드라마 속의 딸이었다면, 우리 아버지가 이런 경찰 아버지가 아니기를 바랐을지도 모릅니다. 아니 사실은, 솔직히 말하면, 우리 자신이 그런 경찰처럼은 살고 싶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IV. 쥐의 미로실험: 형태공명 (形態共鳴)

    저는 한 사람이 바로 서는 것이 이 세상에 얼마나 큰 힘을 미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하다가, 아주 흥미있는 논문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김재희 씨가 편역한 『신과학산책』이라는 책인 데, 그 중 한 논문에서 미국 하버드대학의 심리학 교수 맥더걸(William McDougall, 1871-1938)이라는 분이 매우 놀라운 쥐 실험 결과를 보고하고 있습니다. 맥더걸 교수는 쥐에게 물에 잠긴 꼬불꼬불한 미로에서 빠져나오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막힌 골목마다 전기쇼크 장치를 하고 쥐의 세대를 거듭하면서 실험을 했습니다. 첫 세대는 평균 250회 가량 실수를 하고 출구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다음 세대부터는 점차 줄기 시작하더니, 22세대 후의 자손대에 와서는 25회로 줄었습니다. 22번째 세대는 첫 실험에서부터 대략 25회의 실수 끝에 출구를 찾았다는 말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결과였습니다. 쥐의 21대 선조들이 끊임없이 노력한 결과 22대 후손에게서는 10배의 빠른 속도로 출구를 찾는 유전적 효과를 가져왔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그 다음에 있었습니다. 에딘버러 출신의 크루(F. A. E. Crew)라는 학자는 맥더걸의 실험이 완전히 끝난 후, 맥더걸이 사용한 쥐와 같은 종(種)의 쥐를 그 쥐와 전혀 교배가 없는 다른 나라에서 잡아서 실험을 하였는데, 놀랍게도 대부분의 쥐가 25회 만에 미로를 빠져 나가더라는 것입니다. 공간을 전혀 달리 하고, 상호간 아무런 교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한 종의 쥐가 미로를 25회 만에 빠져나가는 힘을 발휘하면, 그 힘은 공간을 초월하여 다른 지역에 있는 같은 종의 다른 쥐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하는 놀라운 실험이었습니다. 이 논문을 쓴 셀드레이크(Rupert Sheldrake) 교수는 이러한 현상을 형태공명(形態共鳴)이라고 명명했습니다.
    저는 이 실험이 과학적으로 얼마나 신뢰할만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실험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고 생각합니다. 미국 뉴욕에서 나비 한 마리의 작은 날갯짓이 중국의 북경에서 폭풍우를 일으킬 수도 있다는 말은 단순히 상상 속의 가설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혼자 열심히 노력하다가 벽에 부딪치면, 가끔 스스로 이렇게 항변합니다: 남들은 다 편하고 손쉽게 자기만을 위해 잘 살고 있는데, 나 혼자 남을 위해 힘들고 어렵게 산다고 해서, 과연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조금이라도 달라지기나 하는 것일까? 공연히 나 자신만 학대하고, 애꿎은 가족들만 고생시키는 것은 아닐까? 정말 나 하나가 바로 선다고, 세상이 바로 설 수 있는 것일까?
    사실 짧게 보면, 그렇습니다. 공연히 힘만 들뿐,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눈을 들어 멀리 보면, 내가 서면, 의료원이 서고, 세계가 섭니다. 이것이 땅에 우연히 떨어진 하나의 밀알 속에서 발견한, 예수의 비젼이었고 예수의 대망이었습니다.

    V. 나가는 말
    교직원 선생님 여러분, 저는 여러분들이 의료원의 발전을 위해, 그리고 꺼져가는 생명을 살려내기 위해, 얼마나 헌신적으로 수고하고 계시는지를/ 지난 7개월 동안 보아 왔습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이 의료원 안에서, 기꺼이 썩어져갈 하나의 밀알이 되어 얼마나 큰 힘으로 작용하고 있는지를, 저는 지금 매일같이 눈으로 목도하고 있습니다. 간혹 우리 앞에 우리를 절망하게 하고, 우리를 무력하게 하는 일들이 발생한다 하더라도, 결코 낙심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눈을 들어 멀리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금방은 아니라 하더라도, 여러분들이 뿌린 그 밀알들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보다 앞서 가신 분들이 스스로 하나의 밀알이 되어, 기적과도 같이 오늘의 의료원을 일으켰던 것처럼, 지금 또 하나의 밀알이 되어/ 의료원 곳곳에서 흘리시는 여러분의 피와 땀은, 다음 세대에/ 우리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위대한 의료원을 일으키게 될 것입니다. 이 숭고한 대열에 함께 하신 여러분 모두 위에, 하나님께서 항상 함께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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