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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28일 말씀

등록일자
2011-12-29
  • 2011년 12월 28일 채플 말씀 영상

    <세브란스 성탄축하예배/ 김고광 목사(수표교 교회)>

    베데스다에 필요한 사람
    (요한 5:1~9) 

    1) 베데스다라는 지명은 서양에서는 병원이름으로 많이 쓰이는 명칭이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성지순례를 가면 예루살렘 옛 성에 남아있는 베데스다연못을 찾는다. 성지 순례길에 나도 이 베데스다에서 같이 간 성도들과 병중에 있는 이들을 기억하고 서로를 위하여 함께 기도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2) 이 작은 연못은 예수님 당시에도 예루살렘에서 환자들이 치유를 받을 수 있는 기적이 일어나는 놀라운 곳이었다. 아마도 오랜 전부터 베데스다의 병자들의 기적적인 치유가 일어나는 곳으로 알려져 왔을 것이다.

    거기에 오는 환자들은 이 병원, 저 병원에서 많은 의사들에게 치료를 받다가 의사들이 포기하는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이다. 여기 오는 병자들은 병원에서는 더 이상 치유 받고 나을 가망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몸은 몸대로, 마음은 마음대로 상처받고 아픈 사람들 뿐이다.

    3) 이렇게 상처받은 사람들이 모였으니 서로에 대한 안타까움과 동정과 이해가 통하는 곳이어야 했다.
    그러나 실제로 베데스다는 또 다른 경쟁사회의 처절한 모습을 생생히 드러나는 곳이었다. 세상 그 어디보다 더 치열한 생존경쟁이 일어나는 곳이다. 모두가 세상에서는 살아날 수 있는 희망을 포기한 사람들이어서 이곳 베데스다에서는 살기 아니면 죽기로 경쟁하는 곳으로 변질되었다. 여기가 마지막이라고 생각이 들면서 상처받은 환자들이 서로에게 동정은커녕 더 큰 상처를 주고받으면서 생존경쟁을 하고 있다. 여기서 남보다 빨리 치유 받고 나가려면 어떻게 하든지 다른 사람보다 약삭빨라야 한다. 그러니 경쟁심은 또 다른 경쟁을 낮고 그 경쟁은 더욱 처절해 질 수 밖에 없었다.

    4) 생각해 보면 볼수록 이 베데스다에 있는 사람들은 불쌍한 사람들뿐이다. 그곳은 세상에서 고칠 수 없는 질병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그곳은 세상에서 좋은 병원, 좋은 의사를 만날 수 없는 가난한 환자들이 모인 곳이다. 그곳은 몸도 몸이지만 그 위에 치유 받지 못한 마음에 상처받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모두가 상처받은 사람들이 모여서 자기가 받은 아픔과 슬픔만 이야기하지 다른 사람의 아픔과 슬픔을 듣지 못한다.

    5) 사람 사는 세상은 그 어느 곳이든지 경쟁사회이다.
    삶이라는 것이 선택을 강요하는 경쟁을 불러일으키니 인간의 가장 깊은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 경쟁심인지 모른다. 요즘 TV에서 Brain이라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병원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경쟁을 보면서 두려운 생각이 들기도 했다. 병든 사람들을 살리는데 무슨 경쟁이 있겠는가 했지만 실상은 더욱 치열한 경쟁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보았다.

    6) 인간 세계의 경쟁은 간단하게 승자와 패자로 끝나는 것 같다.
    그러나 경쟁은 그것이 어떤 것이든 결국에는 모두가 상처받은 사람들을 만들어 내고 만다. 이것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빚어내는 경쟁의 무서운 결과다. 경쟁은 경쟁을 낮고 그 경쟁의 결과는 서로에게 더 깊은 상처를 안길 뿐이다. 헨리 나우웬이 쓴 “상처받은 치유자(The Wounded Healer)"는 상처받은 사람이 먼저 치유자가 되는 아름다운 모습을 증거해 주고 있다. 내가 상처를 받았다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면 우리 모두 상처받고 상처 주는 사람이 될 뿐이다. 비록 나도 상처받고 너도 상처받았다고 해도 상처 받은 치유자가 되는 것이 예수님의 삶의 길이요 우리의 길이라는 것이다.

    7) 다시 한번 예루살렘의 베데스다로 가 보자!
    우리는 베데스다에서 치유의 기적이 일어나는 일이 얼마나 자주 일어났는지 우리는 모른다. 하루에 한번인지, 한 주에 한번인지, 한 달에 한번인지, 일년에 한번인지 모른다. 우리가 아는 것은 얼마나 경쟁이 치열했으면 이 베데스다에서 치유의 기적을 기다리며 38년을 기다리고 있는 병자가 있다는 것이다. 물이 움직이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다리면서 그들은 세월이 가는 것을 잊은 채 연못의 물만 바라보고 있다.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기적을 기다리며 베데스다에 살고 있는 것 자체가 또 하나의 상처가 된다.

    8) 베데스다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 질수록 때로는 자기생명을 포기하고 싶은 절망으로 떨어진다. 그리고 동시에 자기생명에 대한 애착이 더욱 일어나고 거기 더불어 생존을 위한 경쟁은 더욱 치열해져 갔다. 베데스다에서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이 이제는 다른 병자를 밀어내고 살기 위한 무서운 경쟁자로 변한다.

    9) 거기 있는 사람들이 물이 움직이는 시간이 지나고 언제 일어날지 모른 기적의 시간을 기다리면서 그 길고 지루한 나머지 시간에 어떻게 지냈을까? 궁금하다. 서로의 상처에 대한 이야기로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었을까? 아니면 내가 먼저 기적의 물에 들어가야지. 다른 사람들이 한번 쳐다보면 나는 두 번을 쳐다봐야지. 다른 사람이 아픈 몸을 쉬고 있다면 나는 언제든지 뛰어나가야지. 주위에 누가 나보다 더 재빠르게 물속에 들어갈 수 있을까? 쳐다보는 눈길이 점점 더 예사롭지 않고 경계심은 더하고 긴장이 엄습했을까? 한발자국이라도 물에 가깝게 자리를 잡아야지. 남보다 앞서려고 앞자리를 놓고 경쟁에 경쟁을 하지 않았을까?

    10) 베데스다에서 38년 동안 기적을 기다리는 상처받은 사람을 만난다. 환자로서 38년이라면 그 인생의 대부분의 시간을 이 베데스다에서 보냈다고 할 수 있다. 그가 기다리는 그 38년 동안에 몇 번의 기적이 일어났는지 우리는 모르지만 이 상처받은 사람이 예수님께 고백하는 말 속에서 몸의 상처는 물론 인생의 깊고도 깊은 마음의 상처를 듣고 보면서 우리 마음이 아파온다. 7절에서 그는 고백한다: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들어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나보다 먼저 못에 들어갑니다.“

    11) 여기 베데스다 연못이라는 경쟁의 한 복판에서 어느 누구도 38년을 기다리며 그 아픈 상처에 죽어가고 있는 사람을 배려해 주는 사람은 없다. 오로지 경쟁만 있을 뿐이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이 베데스다와 같은 사회에도 오직 경쟁만이 있을 뿐이다. 그 경쟁에서 모두가 상처받은 사람들이지만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의 상처에 마음을 쓰는 사람은 없다. “승자독식”이라는 말이 경쟁사회의 결과를 대변해 주고 있다. 나머지 사람들은 어떻게 살라고 하는지 상관하지 않는다.

    12) 여기, 경쟁의 한 복판에 꼭 필요한 사람은 누구일까?
    38년의 기나긴 세월을 오로지 이 좁은 연못가에서 살고 있는 사람, 그야말로 죽지 못해 살고 있는 이 사람에게 꼭 필요한 사람은 누구일까? 그 긴 세월에 사랑하는 가족들은 어디에 갔을까? 그 긴 세월동안에 지키고 있다가 물속에 들어다 줄 친구는 어디 있을까? 여기 이 경쟁의 한 복판에 꼭 필요한 한 사람, 상처받은 사람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가볍게 들어주고, 기적의 물이 움직일 때, 기회가 주어졌을 때 다음 기회를 기다리며 이 38년 된 사람을 물속으로 데려가 기적을 일으키게 할 사람, 이런 사람이 38년을 상처를 안고 기적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거기 이 사람에게 꼭 필요한 한 사람은 없었다.

    13) 베데스다에 있는 38년을 기다리는 사람 옆에 필요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우리 주님 예수님께서 그에게 꼭 필요한 분으로 오셨다. 그리고 경쟁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 놓으셨다. 그때 치유의 기적이 일어났다. 그에게 있어야 할 꼭 필요한 사람은 없었지만 그에게는 사람보다 더 필요한 예수님이 오셨다. 예수님이 그에게 꼭 필요한 분으로 오셨다. 그리고 38년을 기다린 이 사람에게 물이 움직이기를 기다리지 않고 바로 치유의 기적을 베풀어 주셨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38년을 상처받은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분이 되어 주셨다.

    14) 세브란스 병원은 오늘의 베데스다요 거기에도 이런저런 모양으로 상처받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의사선생님들과 간호사님들은 자신도 상처받은 사람이면서 동시에 베데스다에서 38년을 기다리고 있는 환자에게는 꼭 필요한 상처받은 치유자들이다. 전 예수병원 원장이셨던 분이 말했다. “과연 나는...환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이 내게 환자로 오신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을까?” 이 베데스다, 병원에서 일하시는 모든 분들에 환자들은 어떤 사람으로 보이는지? 그들에게 꼭 필요한 사람, 치유자가 되는 한 사람이 되는지? 묻고 또 물을 줄 안다.

    15) 처절한 생존경쟁의 한 복판인 오늘의 베데스다에서 상처받은 나에게 홀연히 손을 내미시는 분이 계신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리고 여러분은 예수님처럼 이 베데스다에서 꼭 필요한 사람, 작은 예수가 되기를 기원한다. 경쟁에 원망하지 말고, 상처를 덧나게 하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주지 말고 오직 오시는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이 거룩한 시간, 거룩한 믿음의 체험을 꼭 이루기를 기원한다.

    16) 지금도 오늘의 베데스다에서 치유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여러분들은 다르게 보면 오늘의 베데스다에서 예수님의 치유를 체험한 사람들이다. 여러분들이야말로 오늘의 베데스다에서 오늘의 38년 된 환자에게 꼭 필요한 한 사람들이다.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병원은 하나님께서 오늘의 한국 땅에 내어주신 베데스다이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누구보다도 오늘의 베데스다에서 38년 된 병자에게 꼭 필요한 한 사람이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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