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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월 25일 말씀

등록일자
2012-01-27
  • 2012년 1월 25일 채플 말씀 영상

    <세브란스 직원예배/ 2012.1.25. 김경진 목사(익수스 교회)>

    Cure or Care?
    마가복음 1:40-45

    한 수녀님이 병원을 찾았습니다. 간호사가 물었습니다. 어디가 불편하신가요. 수녀님이 말씀합니다. 어떤 방법을 써도 딸꾹질이 멈추질 않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조금 있다가 수녀님을 의사선생님이 계시는 진료실로 안내해 드렸습니다. 잠시후, 갑자기 수녀님이 비명을 지르면서 뛰쳐 나옵니다. 놀란 간호사님, 의사 선생님에게 묻습니다. 뭐라고 말씀하셨기에 저렇게 놀라 비명을 지르면 수녀님이 나오십니까? 의사 선생님의 말씀, “수녀님, 달꾹질이 문제가 아니라 수녀님, 임신을 하셨습니다” 했죠. 정말 임신하셨습니까? 의사 선생님 빙그레 웃으면서, 아뇨! 하지만 딸꾹질은 멈추지 않았습니까? 그 의사 선생님, 단번에 병을 고치시는 명의가 아니십니까? 세계 역사상 최고의 명의가 있다면 그 분은 바로 예수님일 것입니다. 예수님을 의사라고 비유해서 어떻게 들리실지는 모르겠지만 마가복음 2장 17절에 예수님 말씀하시기를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 라야 쓸 데 있느니라” 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사실 의학적인 면만 보았을 때에도 최고의 명의십니다. 예수님 또한 온전한 물론 당시 불치병을 고치시는 분일 뿐 아니라 정신적인 병도 치유하시는 분이지요. 물론 예수님이 고치신 병 중에 현대의학으로 고치는 병은 많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오늘 본문에 나오는 나병은 요즘은 어렵지 않게 고칠 수 있는 병이라고 하더군요, 그러나 38년동안의 중풍으로 전신마비가 된 환자를 고친다거나 삼일동안 죽어서 썩는 냄새가 나는 나사로의 시체를 다시 살리신 것은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능력일 것입니다. 사실 원하시기만 한다면 못 고칠 병이 없으신 분이지 않습니까? 그래서인 엄청난 많은 무리들이 쉴새 없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너무 많이 밀려들 와서 어떤 때는 예수님이 가운데서 끼여서 죽을까봐 호수에 배를 띄워 그 곳에서 말씀하실 정도였겠습니까? 죽은 사람을 살리는 의사, 최고의 의사이며 병원도 난리가 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놀라운 예수님의 치유의 능력, 과연 그것의 근원은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의 치유의 시작은 어디서부터 일까요? 오늘 성경본문은 예수님의 마음에서 시작한다고 합니다. 아픔과 고통을 당하는 이들을 향한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긍휼한 마음이지요. 본문 41절에서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라고 말합니다. 영어로는 moved with compassion입니다. compassion이란 바로 함께 한다는 com과 고통이라는 passion의 합쳐서 된 낱말입니다. 그런데 헬라어 원어로 보면 compassion이 Splagna입니다. move with bowel이지요. 창자의 부분입니다. 대변을 bowel movement라고 하지요. 무자비하고 긍휼이 없는 사람들을 spiritual constipation이라고도 합니다, 한마디로 영적 변비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치유는 고통을 함께 하시는 마음으로 시작됩니다.
    두 번째 그 마음으로 나병환자를 만지십니다. 터치 하십니다. 사실 예수님의 능력은 대단하셔서 그냥 말로만 하셔도 병을 고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손으로 그 병자를 만지셨다고 합니다. 긍휼한 마음으로 터치한다는 것은 사랑으로 함께 하신다는 돌봄, 그 지고한 표현입니다. 전 어릴 때 아프다가도 제가 다니던 동네병원 할아버지 의사 선생님이 열이 있나 먼저 머리에 손을 언지시고 체온계를 겨드랑이에 넣고 청진기로 심장박동소리를 듣고 등을 두드리시면서 귀기우리고 배를 만져보시고 하다보면 이상하게 아픈 것이 사라졌던 기억들이 있습니다. 중학교 1학년때 장염으로 열이 40도-41도까지 올라가는 힘든 상황에도 그 열을 식히기 위해 몸에 알코올를 솜으로 발라주던 간호사 누님의 따스한 눈길로 인해 마음에 평안을 누렸던 것이 기억납니다. 터치한다는 것은 진정 마음까지 전해지는 무엇인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치유의 사건에 흥미로운 것이 있습니다. 또 한 가지 나병환자를 고치시고 아무에게 말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44절-45절에 말씀에 엄히 경고하셨다고 합니다. 그러시면서 삼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단단히 조심을 시키십니다. 또한 3장에 보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더러운 귀신이 이야기할 때에 그 더러운 귀신에게 그 증거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라고 엄하게 명령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죽은 회장당 야이로 딸을 살리실 때에 그 주위에 사람들에게 절대로 말하지 말 것을 엄하게 경고하십니다. 그 외에 마가복음에 여러 군데 이 놀라운 기적과 같은 치유를 일으키면서도 말하지 말라고 경고하십니다. 이것을 Messianic Secret, 메시아의 비밀이라고 합니다.
    아니 이런 엄청난 병고침의 사건이 있다면 이 기회를 이용해야 할 것이 아닙니까? 더 많은 추종자들이 있을 것이고 유명세를 타면서 더 큰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더 말해라 더 소문이 퍼져나가기를 원하지 않습니까? 크게 신문에도 내어야 할 사항이지 않습니까? 저 자신도 30년의 캐나다에서의 삶을 접고 조국으로 귀국해서 우여곡절 끝에 교회 개척한 지 8개월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계속 목회하면서 이런 마음이 드는데 개척 교회하는 목사들의 어쩔 수 없는 마음인 것 같습니다. 김경진 목사가 기도했더니 치유의 기적이 일어나고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암 말기 환자가 나음을 입고 등등.. 이런 일이 있으면 소문이 나서 교회에 사람들이 혹 밀려오지 않을까?
    메시아의 비밀, 이렇게 예수님 자신이 메시아임을 숨기려 했던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었기에 그 놀라운 치유의 능력을 행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가 행하는 치유하는 능력으로만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메시아로 사람들이 오해하기 원치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이 메시아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그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사람들이 알기 원하셨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맞이하는 예수님 옆에 있었던 로마군병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 상에서 죽으시기까지 우리의 삶의 고통과 죄악의 무게를 함께 지시기를 원하셨던 그 분의 사랑을 보여주시기 원하셨습니다. 죽기까지 우리를 돌보시고 고통하는 십자가의 하나님이 진정 인류를 구원하는 메시아라는 것을 말씀해 주시고 계십니다. 그 사랑이 육신뿐 아니라 인류가 영원한 생명으로 회복될 수 있게 한 치유의 근원입니다.

    1998년에 나온 영화 Patch Adams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의사 헌터 패치 아담스(로빈 윌리엄스 分)의 실화를 그린 작품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 모델인 의사 '패치 아담스'는 환자를 애정과 따뜻한 마음으로 돌보고 그들에게 웃음을 주며 빈곤한 환자를 위한 병원을 만들고자 한 감동의 삶을 그리고 있습니다.
    헌터 아담스(로빈 윌리엄스)는 불행한 가정 환경에서 자라나 자살 미수로 정신병원에 감금됩니다. 삶의 방향을 잃고 방황하던 그는 정신병원의 동료 환자로부터 영감을 받고 새 인생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의 꿈은 사람들의 마음과 정신적 상처까지 치료하는 진정한 의사의 길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버지니아 의과대학에 입학한 괴짜 의대생 패치는 3학년이 되어서야 환자를 만날 수 있다는 규칙을 무시하고 환자들의 마음까지 따뜻하게 치유하려고 환자들을 몰래 만나기 시작합니다. 이 사실을 안 학교 측이 몇 번의 경고 조치를 내리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산 위의 허름한 집을 개조하여 의대생 친구들과 함께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을 위한 무료 진료소를 세우게 됩니다. 그러나 의사 면허증 없이 진료 행위를 한 것이 학교 측에 발각되고 패치와 진실한 사랑을 나누던 동급생 캐린이 정신 이상 환자에게 살해당하는 사건까지 발생 합니다. 인간에 대한 환멸과 자신의 선택한 길에 대한 회의를 느낀 패치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진료소를 닫고 자살을 하려다가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고 다시 진정한 의사가 되기 위해 마음을 다잡게 됩니다. 하지만, 고지식한 학과장은 Patch에게 퇴학처분을 내리고, Patch패치는 이에 승복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주립의사위원회에 퇴학처분 부당성에 대해 제소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조사위원회가 Patch를 불러 공청회를 열면서 질문을 합니다.

    징계위원회: 당신의 행동에 있어서 파생될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만약에 당신의 환자 중에 죽기라도 한다면 말이지요.

    죽음은 무슨 문제가 됩니까? 무엇이 그렇게 죽을 정도로 무서운 것이 무엇인가요?
    왜 우리는 마땅한 인류애와 존엄성과 품위를 가지고 죽음을 대할 수는 없는가요? 그리고 유머와 웃음으로 말이지요.
    죽음은 우리의 적이 아닙니다. 만약 우리가 질병과 싸운다면 가장 참혹한 질병과 싸워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무관심입니다.
    지금 저는 이 학교에 사람들이 감성의 전이와 직업적 거리감에 대해 강의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감성의 전이는 불가피한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상대에게 영향을 줄 수 밖에 없습니다. 환자와 의료진의 관계에서 우리가 이런 영향을 원하지 않습니까?
    의사의 사명은 단지 죽음을 막는 것만이 아니라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있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질병을 치료하면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치료하면 제가 보장하건데 어떤 결과가 나온다고 할지라도 여러분은 이깁니다.

    저는 의사기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섬길 수 있기 원합니다. 그것 때문에 저는 모든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저는 모든 것을 얻었습니다. 저는 환자들과 병원의 의료진들과 삶을 나누었습니다. 저는 그들과 함께 웃었습니다. 그들과 함께 울었습니다. 이것이 제가 인생에 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저의 증인이십니다 어떻게 오늘 심위위원님들이 어떻게 결정을 내리신다고 할지라도 저는 이 세상에서 본 의사중에 가장 최고의 의사가 될 것입니다.

    그는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12년간 정식 건물도 없이 집을 기지로 하여 의료보험이 없는 15,000명 이상의 환자들을 무료로 치료해 주었다고 합니다.현재 버지니아 서부에 424,914 평방미터의 땅을 구입하여 게준타이트 병원이 건설되고 지금까지 1천여명이 넘는 의사들이 그의 뜻에 동참하기 위해 대기 중에 있다고 합니다.

    영성가요 카톨릭 신부였던 헨리 나우웬, 그의 글 돌봄(Care)는 모든 치유(Cure)의 근원입니다.(영혼의 양식 2월 8일) - Care, The Source of All Care 라는 글을 소개합니다. 돌봄(Care)은 치유(Cure)과 좀 다른 것입니다. 치유(Cure)는 ‘변화’를 의미합니다. 의사, 변호사, 목회자, 사회복지사 - 그들 모두는 그들의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을 사용해 사람들의 삶에 변화를 가져다주기를 원합니다. 그들은 자신이 해내는 어떤 종류의 치유(Cure)책이든 그 치유(Cure)에 대해 보상이나 사례를 받습니다. 치유(Cure)라는 것이 바람직한 것일지는 몰라도 그것이 돌봄(Care)에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면 치유(Cure)라는 것은 아주 쉽게 과격해지고 조작적이고 심지어 파괴적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돌봄(Care)이라는 것은 함께하는 것이며, 함께 우는 것이며, 함께 고통하는 것이며, 함께 느끼는 것입니다. 돌봄(Care)이라는 것은 바로 긍휼(compassion) 깊이 측은하게 느끼는 마음입니다. 바로 상대가 나의 형제요, 나의 자매요, 사람이며, 죽을 수 밖에 없는, 상처받기 쉬운 나와 같은 존재라는 것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돌봄(Care)이 우리의 첫 번째 관심이 될 때, 치유(Cure)는 선물로 받을 수 있는 것이 됩니다. 종종 우리는 치료해서 고칠 수 없을 때가 있지만 우리는 언제나 돌보아주고 보살펴 줄 수 있습니다. 돌보아 준다는 것은 바로 인간답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Compassion을 가지고 돌보아주고 보살펴 준다는 것은 우리가 최고의 의사, 최고의 간호사가 된다는 것입니다. Compassion을 가지고 돌보아 준다는 것은 바로 우리가 예수님 같이 된다는 것입니다. Compassion을 가지고 돌보아주고 보살펴 준다는 것은 우리가 바로 하나님 같이 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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