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인메뉴로 바로가기
콘텐츠 바로가기
하단메뉴로 바로가기



채플동영상

HOME 안에 사명구현 안에 원목실 안에 채플동영상

2012년 3월 28일 말씀

등록일자
2012-03-30
  • 2012년 3월 28일 채플 말씀 영상

    <장병철 원장(심장혈관병원)>

    아브라함과 에비슨의 믿음

    로마서 4:18
    아브라함은 나이 백세가 다 되어 적자 아들을 얻으리라는 희망이 사라진 때에도 바라면서 믿었으므로 “너의 자손이 이와 같이 많아질 것이다”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저는 2008년 심장혈관병원장의 직분을 맡은 이후 오늘이 4번째 심장혈관병원 주관 예배에서 이야기 드릴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우선 여러분들 앞에서 저의 작은 경험과, 여러분들과 함께 주님의 말씀을 생각하고 나눌 수 있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금년에는 제목에 말씀대로 “아브라함과 에비슨의 믿음”에 대해 저의 아마도 이 자리의 마지막이 될 것으로 생각하여 에비슨 선생님의 믿음과 아울러 심장혈관병원에 대한 저의 믿음에 대하여 생각해 보려 합니다.
    4번의 메시지 중 첫번째 말씀은 우리 심장혈관병원이 지금까지 하고 있는 행복 캠패인의 주제인 행복에 대해서였고 두번째는 사랑에 대한 말씀을 드렸습니다.
    작년에는 무슨 제목으로 말씀 드린 줄 기억하시나요? 소망에 대해서 말씀 드렸습니다. 세브란스씨 께서 한국에 병원을 건립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려내려는 소망을 이루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영상(한국을 떠나는 에비슨);
    76세의 노인 의사는 부인과 함께 서울을 떠납니다. 33세인 1893년 한국에 들어오셔서 진료와 선교 그리고 교육에 평생을 바치고 이제 사명을 다하여 1935년 12월 2일 미국으로 돌아가시는 에비슨 선생님의 모습입니다.

    저는 두가지의 의문을 가졌습니다
    첫째. 왜 에비슨은 한국으로 들어오게 되었을 까요?
    그리고 어떻게 세브란스병원을 지으시고 의과대학을 설립할 수 있었을 까요?
    먼저 왜 에비슨은 한국으로 들어오게 되었을 까요?
    저는 약 15년 전에 우연히 이광린의 “올리버 알 에비슨의 생애”를 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속에 있는 에비슨 선생님의 기록을 그대로 말씀 드리겠습니다.
    약사로써 약학대학 강사로 (EB Shuttlewoorth ) 사는데 문제가 없었던 에비슨 선생님은 1885년 토론토 의과대학을 들어가며, 이곳에서 의료 YMCA 를 조직하며 기도를 합니다.
    첫번째 기도 내용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많은 학생들 앞에 자기의 기도가 최초의 공식적인 행사임을 알고 감격에 젖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당시 같은 멤버이였던 Robert A. Hardie는 선교사로써 한국으로 떠나게 됩니다. 이후 에비슨 선생님은 하디 선교사에게 200달러의 선교기금을 내었으며, 매달 헌금을 내면서 선교사업에 도움을 주게 되었습니다. 이때 의료선교에 그리고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1892년에는 에비슨 선생님은 미국에 안식년으로 귀국해 있던 언더우드 목사님을 토론토로 초청하여 강의를 듣습니다.

    “하루 저녁에 그는 우리 집에서 저녁을 같이 먹게 되었는데 나더러 조선으로 나오지 않겠느냐고 물어 보았다. 그리하여 우리 내외는 그에게 우리가 장래 일을 위하여 어떻게 결심한 것을 말하게 되었다….”
    (특별히 1932년 3월 9일자 기독신보에 실린 “에비슨박사 소전” 언더우드 목사와의 만남”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에비슨 선생님은 이미 한국에서 의료선교를 할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순종하며 한국으로 당장 갈 준비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곧 뉴욕으로 가서 장로교 선교 본부의 ER Ellinwood 박사를 만나 한국으로 가기로 결심을 합니다.
    그러나 토론토로 돌아온 에비슨 박사님은 대학의 학기가 끝나기 전이었으며, 또 세자녀 중 셌째애가 1년 반 밖에 안된데다가 병에 걸려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립니다.

    “어린이가 죽는다 해도 병 때문에 출발을 늦출 수는 없다. 만일 내 아이가 ‘벤쿠버로 가서 배를 탈 때까지 살아 있으면 한국으로 갈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가지 말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겠다” 라고 대답하고 떠납니다. 결국 벤쿠버에 도착하여 배를 기다리며 머무는 동안 아이는 회복하여 배를 타는데 아무런 지장을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의 예를 들겠습니다. 아브람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의 자손이 저 별들처럼 많아질 것이다 ”아브람이 주님을 믿으니 주님께서는 아브람의 그런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창 16: 6). 아브라함은 주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100세에 그리고 임신인 불가능한 사라에게 하나님은 이삭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얻은 잠시간의 기쁨 후에 자식을 번제로 드려야 하는 찢어지는 마음의 고통을 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믿었습니다. 모리아 산으로 향할 때도, 아들을 꽁꽁 묶어 놓고 단호히 제단에 올려 놓는 그때 까지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칼을 들고 내려치려는 순간, 주님의 천사가 말합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급박하게 부릅니다.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아라!” 그리고 번제를 드릴 숫양 한마리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산에서 준비될 것이다’ 라는 뜻으로 아브라함은 “여호와이레라” 하였습니다.

    둘째 왜 그리고 어떻게 세브란스병원을 지으시고 의과대학을 설립할 수 있었을 까요?
    왜 에비슨은 한국에서 진료와 교육 그리고 선교를 하기로 결심했을 까요?

    에비슨 박사 소전, (1932년 7월 13일) 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처음에 선교사로 조선에 나온 서양사람은 몇이 못 되었다. … 그들로써 당시 조선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끊임없이 발생하는 무수환 환자의 지극히 적은 수를 치료하여 줄 뿐이었고, 서양 의사들이 조선의 질병을 방지하는 동시에 과학적 의술과 위생의 사상을 보급하려면 조선사람을 교육시켜서 조선사람으로 서양의술에 통한 의사를 양성하는 것 밖에 상책이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물론 내가 의료 교육을 위하여 생각한지는 오래되었다. 왜그러냐하면 내 자신이 일즉이 가나다 토론토 떠나기 전에 의학과 약학을 교수한 경험이 있는 까닭이었다. 그런고로 나는 조선에 의학교 하나를 세워보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학생들을 모집합니다. 처음에는 고등계급사람들을 모집하려 합니다. 그리고 청년 몇 사람을 만나
    [그대는 의사가 되기를 원치 않는가? ]
    [의사가 되면 무엇을 합니까?]
    [의사가 되면 병원에 와서 드러운 현대 난환자와 여러가지 속병과 여러가지로 고통하는 환자들을손을 대여 곶여 주고, 치료하는 것인데 이 일을 하려면 몬저 의학의 초보라도 배오지 않고는 할 수 없다.] 고 대답하였다.
    이 말을 듲더니 그 청년들은 하기 슬혀하는 기운을 보이며
    [우리는 그런 일을 감당할 수 없다] 하고 가버렸다.
    나는 그들 중에 손톱을 기른 사람이 잇는 것을 보고
    [손톱을 왜 그러케 기르느냐?] 고 물은 즉 그들은 대답하기를
    [이는 우리가 도모지 상일하지 아니하였다 함을 보이는 것이라] 고 하였다.
    그리고
    상류 계급 사람을 모집할 뜻을 단념하고 하류사람이라도 누구던지 이런 험한 일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모아서 학교를 시작하기로 하였다.

    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중에 첫번째가 김필순입니다. 배재학당을 나와 그래도 영어를 어느 정도 배운 김필순을 학비를 주며 Gray 해부학부터 번역을 하며 가르치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에비슨 선생님이 캐나다에서 끝냈으나 이 번역서를 분실하여 안식년에서 돌아온 1900년 가을에 다시 번역하기 시작하였고 유인물로 만들어 다른 여러 선교병원에 보냈다고 합니다.
    지금은 의과대학에 들어오기 얼마나 어렵습니까. 그냥 험한 일을 좋아하면 의과대학생이 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여기에 큰 헌신과 사랑이 필요함을 중시하는 에비슨 선생님의 철학을 느끼게 됩니다.

    영어책을 번역하고, 사랑과 봉사의 정신은 있었으나 박서양과 같은 무식한 하층 계급의 사람들을 교육하느라 얼마나 많이 힘들었을 까요?

    의사 아닌 일반인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하여 논문하나 한글로 번역하여 보니까 매우 힘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에비슨 선생님은 당시 얼마나 힘들었을 까요?
    이는 하나님의 사명을 완수하려는 믿음으로 생각합니다.

    [영상]
    R A Hardie“기독신보” [에비슨 박사의 귀국 1921년 5월 6일]
    “에비슨 박사의 성공은 그에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그의 관용성과, 자기 희생적 정신과 그의 끊임없는 노력의 결정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영상(동상)]
    1928년에 세브란스동창들은 홍석후 회장의 노력으로 에비슨 선생님의 동상을 제막하였습니다. 물론 이 동상은 1943년 세계 2차세계대전 때 일본이 이를 녹여 대포를 만들었다 합니다.
    [동상]
    [이후 1966년에 새로 동상을 만들어 봉헌합니다]

    에비슨 선생님이 떠나시기 전 1935년 11월 14일 송별회에서 한국 교회를 대표하여 윤치호 선생은
    “세브란스 동창회에서 세운 귀하의 동상이 병원 구내에 있습니다….
    누구나 실감하지 못하는 감정을 가지고 동상을 쳐다 볼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말 못하는 동상 보다 더 훌륭한 유산은 기독교 청년회와 의학전문학교에서 일하는 귀하의 두 아들입니다. 이들은 귀하가 두 분야에서 시작한 선교사업을 계속할 것입니다. 한편 이러한 일보다 더 고귀한 것은 영원히 귀하는 기억하게 될 세계의 훌륭한 기구 즉 세브란스병원과 의학전문학교, 그리고 연희전문학교를 남겼습니다.

    [영상; u-severance]
    지난 127년동안 세브란스병원은 선배님들의 많은 노력의 결과로 지금에 와 있습니다. 지난 2005년에는 우리 힘으로 새병원을 건축하게 되었으며, 미래를 위한 시스템으로 강진경 의료원장님은 유비쿼터스 병원을 위한 정보시스템을 기획하셨습니다. 2005년 11월 많은 어려움 가운데서도 우리는 지금의 U-Severance를 도입할 수 있었습니다.
    에비슨 선생님의 노고에 비하면 매우 적은 한 부분이지만 우리 많은 교직원들은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세브란스가 최고의 시스템을 만들어 교직원들과 고객들에게 행복을 줄 수 있으며, 이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올릴 수 있다는 믿음으로 행한 모든 교직원들의 노력의 결과로 생각합니다. 할 수 있다는 믿음과 함께 어려움을 이겨내고 지금의 u-Severance 가 있게 된 것입니다.

    1956년 9월 홍필훈 선생님과 조광현 선생님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심장수술을 하였습니다. 저는 지닌 주 의료원장님과 기조실장님 등 여러 분들과 함께 미국의 클리브랜드를 방문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이곳에서 미국의 1962년 선배님이신 허정 선생님께서 많은 도움을 주셨는데 선생님으로부터 재미있는 일화를 들었습니다. 심장수술을 성공하기 위하여 부검이 있는 날이면 여러 흉부외과 의사들과 함께 실제 심장에서 좌심방 appendage 에 purse-strin suture를 하고 손가락을 넣어 하나, 둘, 셋 하면서 도상훈련이 아닌 실제 훈련을 하고 승모판막절개술을 성공하였습니다. 이후 차홍도 선생님과 함께 세브란스의 심장발전에 많은 공헌을 하시게 됩니다.

    심장혈관병원은 이미 21년전에 국내 최초로 지어졌으며, 2011년 작년에는 증축과 리노베이션으로 재무장하였습니다. 비젼 2020 “Global top 10”을 위하여 모든 교직원들이 합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을 기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구체적인 준비를 하고 시작해야 할 시기 입니다.

    에비슨 선생님은 한국을 떠나시기 전 답사에서 “진보(進步)의 귀함”을 역설하였습니다. 세상에는 정지 상태에 있는 것은 없으며 진보하지 않으면 퇴보하며, 하나님이 태초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하는 것보다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기 시작하여 오늘날까지 창조를 계속하고 있다고 보아야 된다 .고 하면서 한국국민들도 현상에 만족하지 말고 진보를 위해 노력해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믿음이 그의 행함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므로 행함으로 믿음이 완전하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에비슨 선생님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행하였듯이 우리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받들어 함께 노력하여야 할 것입니다..

    함께 기도 드리겠습니다.
    우리 세브란스병원과 연세대학교를 사랑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우리들에게 에비슨 선생님과 같은 믿음의 선배님들을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우리 모든 교직원들이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다시금 깨닫게 하시고, 우리 세브란스가 진정 육체적, 정신적으로 고통 받는 환자들을 사랑하며, 주님의 말씀을 전파하며, 이 세브란스병원이 주님의 영광을 세계 만방에 드러내기를 기원합니다. 우리 모든 교직원들에게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시고, 용기를 주시고, 주님의 사명에 동참하는 능력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를 믿음 가운데 새생명으로 인도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 받들어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다음글
    다음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2015년 04월 08일 말씀

    콘텐츠 처음으로 이동


    네크워크 링크안내/사이트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