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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30일 말씀

등록일자
2012-06-04
  • 2012년 5월 30일 채플 말씀 영상

    <김동수 어린이병원장>

    죽는 연습

    얼마 전에 환자를 상담한 경험이 있다. 도무지 부모 말씀이나 학업에 대한 흥미는 없고 컴퓨터 게임에만 열중하는 아이였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았더니 아이는 ‘재밌잖아요’라고 했다. 재미라는 영적인 문제에 잡혀서 자신의 삶이 완성을 향해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 몹시 안타까웠다. 많은 사람들이 말초적인 재미에 이끌려 진정한 존재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얼마 전에는 인터넷에 시체놀이를 하는 외국 사람들의 사진이 보도되는 것을 보고 아연실색을 한 적이 있다. 도심 아무데서나, 나무 위에서, 또는 건물 가에서 위험을 무릎 쓰고 시체처럼 꼼짝하지 않는 그런 놀이라고 한다. 그러다 정말 사고가 나서 사망하는 경우가 있어서 시체놀이에 대한 경고가 인터넷 글에 올라왔다. 재미를 추구하며 시체놀이를 하다가 죽음에 까지 이르는 것을 보면, 시체놀이가 그렇게 재미(?)있나보다.
    그러나 그들이 정말 죽고 싶었을까? 사람들은 그렇게 죽고 싶을까?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모두가 죽기를 무서워하고 있다고 하였다. 히브리서 2장 15절에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가 사람들의 실상이라고 하였다.
    나도 이라크 전쟁 직후 바그다드에서 진료활동을 하는데 죽음이라는 존재가 내 가까이 있다는 것을 실감하였다. 당시 바그다드는 매우 위험한 상황이어서 단기의료봉사를 하는 것에 많은 사람들이 우려를 하였다. 나는 선교지에서 죽으면 순교라는 아름다운 헌신이라고 마음먹고 바그다드를 들어갔지만 막상 눈앞에서 벌어지는 총격전을 목격하면서 정말 죽음이 두려운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나의 연약함을 회개한 적이 있다.
    이번 캄보디아 단기의료봉사를 꾸리면서 열대병에 걸리면 위험하지 않느냐는 동료들의 의견에 사람이 한번 죽는 건데 뭘 그리 두려워하느냐고 받아친 적도 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매일 죽는다고 고백하였다. 왜 매일 죽는가? 성경은 말한다. 우리가 죽음으로, 그리스도의 생명은 역사한다고. 우리가 약할 때 하나님은 강하시고, 우리가 미련할 때 하나님은 지혜로우시다는 것이다.
    오늘 성경말씀에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해도 싸이지 않는 이유는 우리 속에 역사하시는 그리스도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환란을 당해 죽을 것 같지만 그런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우리가 살 수 있는 것이다. 성경은 결론적으로 무어라고 하는가?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진다고 하였다. 환란으로 인해 죽는 우리의 겉사람, 그것으로 끝나는 것 같지만 우리의 겉사람이 죽어가는 대신 속사람이 날로 날로 새로워져 간다는 것이다.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해 앞으로도 못가고 뒤로도 못가고 옆으로도 못가는 참담한 상황이라고? 그러나 하늘은 열려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한다.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신령한 은혜를 누가 막겠는가? 우리의 지혜가 아니다. 하나님의 지혜다. 우리의 능력? 아니 하나님의 능력이다.
    둘째 아담인 예수님이 왜 옆구리를 찔려 물과 피를 흘리셨을까? 그것 첫째 아담의 갈비뼈를 통해 신부인 이브를 창조하신 것처럼, 둘째 아담의 갈비사이를 통해 흘리신 물과 피를 통해 또 다른 새로운 신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신비로운 섭리가 아니겠는가? 물과 피로 거듭난 우리,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우리의 영혼이 거듭났으므로, 우리를 그리스도의 신부답게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엡 1:4), 우리가 그리스도의 진정한 신부가 되기 위해 우리의 겉 사람은 죽음을 통해 날로 낡아져 가야 하지 않겠는가? 속사람이 날로 새워져가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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