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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7월 4일 말씀

등록일자
2012-07-09
  • 2012년 7월 4일 채플 말씀 영상

    <안신기 목사>
    (의료선교센터 소장)

    아름다운 발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누리고 있는 소통 Communication의 방법은 과거의 세계에는 상상도 못하는 일이었습니다. 인터넷과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은 이 세상을 물리적으로 하나의 공동체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발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는 우리 옛 어른들의 지혜는 오늘의 시대를 예언한 것이 되었습니다. Google과 인터넷은 여러분이 원하는 정보를 기가 막히게 찾아줍니다. 원하는 정보의 몇 가지 keyword만 정보 검색창에 넣어주면, 수천, 수만의 정보를 찾아줍니다. 이것은 곧 수 천, 수 만의 메시지를 찾아 들을 수 있다는 의미가 되기도 합니다.

    그렇게 보면, 이런 세상에서 살고 있는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오늘의 읽은 본문에 기록된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라는 말씀은 이제는 별로 의미가 없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굳이 발로 갈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소식을 전하기 위해 소아시아와 지중해를 발로 다녔던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11장에서 그가 소식을 전하기 위해 겪은 일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고생할 필요가 없이 소식을 전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니 소식을 전하기 위해 그런 고생을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 다시 길을 떠납니다. 중국, 캄보디아, 몽골로, 말레이지아와 세네갈로, 그리고 우즈베키스탄으로 떠납니다. 지난 주에 케냐와 짐바브웨로 떠나는 지체들을 파송했습니다. 은퇴를 앞두고 몽골과 이디오피아에서 가르치며, 치료하며 살기로 작정한 교수님들이 계십니다. 겨울에 케냐의 선교병원에서 시간을 보내기를 원해서 의료선교센터에 신청서를 제출한 학생들이 있습니다. 세브란스 공동체 안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렇게 떠나는 발길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렇게 떠나는데는 적지 않는 재정과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준비하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나는 것이지요.

    우리가 이렇게 이렇게 떠나는 것은 해마다 여름이 되고 7월 첫주가 되면 단기선교파송예배를 드리는 것이 전례이고 그동안 늘 떠나왔기 때문에 지금 또 이렇게 파송예배를 드리고 떠나는 것일까요? 이렇게 세상이 달라졌는데도 그 변화를 인지하지 못한 채로 습관처럼 떠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왜 떠나는 것입니까? 아니 왜 떠나야 하는 것일까요?

    삶을 변화시키는 메시지는 말로만 전달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선교의 본질은 복된 소식을 전하는데 있습니다. 종교적인 주장이나 권고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 역사 가운데 이루신 그 놀라운 사건 그로 인해서 우리 가운데 시작되고, 임하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전하는 것입니다.

    소망이 없던 흑암의 땅과 역사에 새로운 소망과 빛이 임했음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 빛의 자녀가 된 이들이, 그 빛가운데 사는 이들이 그 빛을 드러내고, 되비춤으로서 선포하는 것, 이것이 선교입니다. 예수를 믿어 구원받는다는 것은 그가 통치하는 나라에서 그 통치를 따라 사는 삶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죽은 뒤에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라, 오늘 이 자리에서의 사건이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이 소개하는 하나님의 나라, 구원의 실재는 이러합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않습니다. 유대인, 이방인의 구별이 없고 동일하신 주님이 그 분을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그 분의 풍성함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이 실재를 인정하고, 믿고 사는 것이 구원받음입니다. 높고 낮음이 없이, 모두가 함께 풍성함을 누리는 삶을 경험하고 그 삶이 확장되어 가는 것, 이것이 선교하는 것이지요. 성경은 이것을 복음에 순종한다고 적습니다. 그들이 복음에 순종하지 아니하였다는 부정적인 표현으로 기술되고 있습니다만, 이어지는 16절 가운데 나오는 표현이지요. 순종이라는 말이 요구에 따르는, 그래서 자유가 제한되는 그런 느낌이 있지만, 복음, 곧 복된 소식에 순종한다는 것, 즉 그 복된 소식을 따른다는 말은 그 복된 소식을 누리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불치의 병을 앓는 이에게 완치의 방법이 알려졌을 때, 즉 복된 소식이 알려졌을 때 그 완치술을 행할 수 있는 의료진에게 자신의 문제, 곧 불치의 병을 맡기는 것이 복된 소식에 순종하는 것이요, 그렇다면 그것은 누리는 것입니다. 이처럼 복된 소식을 들어, 믿어 순종한 사람들의 삶은 변합니다. 그 변화된 삶을 경험한 사람들은 그 소식-자신의 삶을 송두리채 바꾸어 놓은 그 기쁨의 소식, 복된 소식을 듣지 못한 이들에게 전하기 원했습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찾아 오셔서 복음을 전해주시고, 그 자신이 복음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의 제자들은 누군가를 찾아가 그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랬듯이, 그 소식을 들은 이들이 우리를 찾았고, 우리에게 전해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역사도, 우리도 변했습니다. 이 life-changing good news, 삶을 변화시키는 복된 소식은 그 소식을 누리는 사람을 만남으로 전해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삶으로 전해지는 소식이기에 누군가를 찾아 떠나는 발길이 필요한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의 세 가지 핵심요소를 말합니다. 즉 메시지를 잘 전달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첫째는 Logos입니다. 전달하는 내용이 옳고 그 전개가 논리적이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둘째는 Pathos입니다. 전달하는 이에게 열정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현대에는 이것을 감성적인 touch가 일어나야 전달이 된다는 것으로 읽고 있지요. 마지막으로 필요한 것이 Ethos입니다. 이것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이의 사람됨입니다. 그가 과연 어떤 사람인가가 그가 전달하는 메시지에 힘을 준다는 것이지요.

    오늘날 Christian message가 힘을 잃어가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왜 오늘날 크리스챤 메신저들의 발길을 향해 아름답도다 복된 소식을 전하는 이의 발길이여 라고 칭하기 어려운 것일까요? 그들이 말을 못해서가 아닙니다. 논리정연하고 감동적인 말이 넘칩니다. 그렇다면 무엇때문입니까? 그들의 사람됨, 곧 삶의 모습 때문이 아닐까요? 그들이 전하는 복음이 그들의 삶을 control하고 있는 모습이 발견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이 전하는 소식을 믿을 수 없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복된 소식을 전하기 위해 파송을 받는다는 것은 참으로 중대한 소명이자 축복입니다. 소식을 전하는 자가 된다는 것은, 곧 그 소식에 순종하는 자, 그 복된 소식을 누리는 자가 된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런 의미에서 오늘 우리 모두가 몽골, 캄보디아, 필리핀뿐 만이 아니라 저 세브란스라는 mission field를 향해 파송되어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한 가지 더 떠나야 하는 이유는 다가가서 손 내밀어 잡아주어야만 비로소 소식을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이 이 지구상에는 여전히 많기 때문입니다. 첨단 시설의 병원, 새로운 치료법은 많은 나라, 많은 사람들에게는 전혀 다른 세상의 이야기입니다. 이디오피아는 인구가 1억을 헤아리는데, 의사는 4600여명이고 그나마 대부분이 일반의입니다. 인구 1억에 이비인후과 전문의가 1명인 것이 그들의 현실입니다.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 나라들, 동남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이 이런 형편과 상황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이 거친 땅을 딛고 다가가는 발이 필요합니다. 누군가 그리스도인의 가슴은 부드럽고, 발바닥은 딱딱해야 하는데, 발바닥이 부드럽고 가슴이 딱딱해져가고 있다고 안타까워했지요. 그렇기에 아름다운 발의 발바닥은 딱딱한 발바닥이어야 합니다. 거친 땅도 넉넉히 갈 수 있는 딱딱한 발, 이것이 복된 소식을 전하는 자의 발길이어야 합니다. 오늘 여러분이, 그리고 세브란스가 복된 소식을 전하기 위해 파송을 받는다는 것은 첫째로 여러분의 삶이 그 복된 소식에 의해 이끌려 사는 아름다운 삶이라는 뜻이고 아니 지금 다 그렇지는 못하더라도 결국은 그렇게 빚어져 가는 것이 여러분의 운명이라는 뜻이고 둘째로 그렇기에 여러분의 발은 거친 땅을 향해 내디는 튼튼한 발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이 복된 소식이 그들의 삶을 통해 누군가에 들려지기 원하십니다. 오늘의 성경 말씀을 보십시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진정으로 변화된 사람들을 다른 누군가가 만나 그들을 보고 들을 때 사람들은 비로서 복된 소식을 진정으로 들을 수 있고, 그럴 때 그들은 믿을 것이고, 그들이 또한 그 이름을 부르며 선포하게 될 것입니다. 세브란스에게 선교의 사명을 주셨다는 것은 이 아름다운 소식을 누리는 감격과 그 소식을 힘차게 나아가 전할 수 있는 힘을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오늘 우리 모두의 발길이 이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자의 발길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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