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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26일 말씀

등록일자
2012-09-28
  • 2012년 9월 26일 채플 말씀 영상

    <정현철 암센터 원장>

    선한 세브란스인

    작년에는 정의에 대해서 말씀드렸으므로 금년에는 선함에 대해서 같이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 2차 대전의 일본군 수장이었던 도조 히데키는 전쟁이 끝나자 권총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이웃에 사는 의사에게 심장의 위치를 배워, 먹물로 표시한 다음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사람이 왼손잡이였다는 것입니다. 왼손에 권총을 들고 왼쪽의 심장을 쏜 것입니다. 여러분이 실제 해보시면 알겠지만, 각도가 부자연스러운 탓에 손가락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아, 자살에 실패하고 체포되어 수혈로 목숨은 건지게 됩니다. 그 후 그는 재판을 통해 교수형을 당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 사람을 수혈로 살린 것이 선한 행동일까요? 아니면 어차피 사형 당할 전범이니 그냥 그대로 죽도록 놔두는 것이 선한 행동이었을까요? 혹은 이 사람과 가족에게는 두 번의 고통이지만 전쟁 피해자들에 대한 죄를 묻고 정의를 실현한 교수형이 선한 행동이었을까요?
    1) ‘선하게 살면 행복을 가져다줄까?’ 라고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생을 살면서 슬픈 사실중 하나는 나쁜 사람이라고 해서 자신을 나쁜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악한 자가 망한다는 말이 반드시 옳지 아니며, 또한 선한 자가 잘 산다는 말도 반드시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2) 그렇다면 우리는 ‘왜 선하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다음 질문을 하게 됩니다. 첫째는 우리의 삶은 다른 사람과 지속적인 만남과 소통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이같이 사회적 동물의 문화 속에서 형성된 우리의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셋째는 문제가 그리 단순하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3) 그러면 “어떻게 선하게 살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오늘의 성경 말씀에는 선하게 사는 방법에 대해서 3가지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1. 첫 번째 가이드는 의롭게 사는 삶입니다.
    의롭다는 것은 정의를 행하며 정직하게 사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보통 아주 사소한 수준으로 부정행위를 저지릅니다.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는 대부분 스스로를 꽤나 착한 사람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나쁜 사람들도 스스로를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우리는 아주 조그마한 부정행위를 하여 이익을 챙기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의 부정해위를 합리화하는데, 이는 본인이 나쁜 사람으로 보이는 것에 대해 강한 부담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두 가지 예를 보여드리겠습니다.
    ● 10 센티미터의 거짓말
    에버리지 골퍼가 자기가 친 공을 오른쪽으로 10cm만 옮기면 다음 공을 치기가 훨씬 유리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손으로 공을 옮기는 방법, 발로 차서 옮기는 방법, 클럽으로 쳐서 옮기는 방법 중 어느 것이 가장 마음이 편할까요?’ 하고 물었습니다. 대답은 클럽으로 할 때 23%, 발로차서가 14%, 손으로 집어서가 10%였습니다. 만약 손으로 공을 잡아서 옮기면 그 행동에는 의도성이 있으므로, 우리는 정직하지 못한 행동을 했다는 사실에 자책감을 느낄 수밖에 없음을 보여줍니다. 한편, 발로 찰 때는 그 행위의 의도성이 줄기는 하지만 그래도 조금은 남습니다. 그러나 클럽으로 칠 경우에는 공이 우리가 의도한 대로 정확하게 이동하지 않기 때문에 “공이 최종적으로 놓이는 위치는 우연에 의해서 결정된 것이지 내 의도가 아니다.” 라고 하면서 자신의 부정행위를 완전하게 용서하게 됩니다.
    ● ‘할머니가 돌아 가셨어요.’
    이스턴 코네티컷 주립대학 생물학교수 마이크 애덤스는 기말고사 직전에 집중적으로 수강생의 10%에서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면서 시험 일자를 늦춰달라고 함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왜 하필 기말고사 직전의 한주가 학생들의 할머니에게 그 토록 위험한 시기일까?’ 하는 의문을 품고 조사해보니 학생들의 할머니가 중간고사 때는 평소보다 10배 더 많이 사망하고, 기말고사 때는 19배 더 많이 사망하는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는 이러한 현상을 ‘학생의 할머니가 손자가 받을 시험결과를 너무 걱정한 나머지 사망하지 않았을까?’ 하고 추정하였습니다. 이런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성적이 나쁜 학생들의 할머니들은 기말고사 주간에 집중적으로 건강을 관리하여 갑작스러운 사망을 예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울러 성적이 나쁜 학생은 자기 할머니에게 시험에 관련된 이야기를 일절 하지 않도록 사전 교육을 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이 연구의 결론은 이 세상의 모든 할머니들은 손자가 기말고사를 앞두고 있을 때에는 특히 건강에 유의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교수의 분석이 제대로 되었다고 동의하시는지요? 사실 이 연구의 최종 결론은 사람은 누구나 기회가 닿으면 언제든지 사소한 거짓말을 하려고 하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지 못하게 하는 통제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통제 장치에 대해 한 가지 예를 들어드리겠습니다.
    - 미들 테네시 주립대학의 한 교수는 학생들이 과제물 작성에서 부정행위를 하는 것을 보고 학생들을 모아놓고 부정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쓰게 했습니다. 이 서약서에는 만일 자기가 과제작성 중 부정행위를 저지르면 “자신은 평생 후회할 것이며 죽어서는 지옥에 갈 것이다.” 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이 서약서는 엄청난 물의를 일으켰습니다. 지옥의 존재를 믿지 않거나 혹은 자신이 지옥에 갈 것이라고 믿지 않는 학생들까지도 서약서에서 지옥을 빼야한다고 항의 했습니다. 이 현상은 지옥이라는 극단적인 단어가 학생들에게 상당히 영향을 주어 이 서약서의 애초 목적인 부정행위의 통제가 달성 된 것입니다. 감시당하는 것 같다는 작은 자극으로도 거짓된 행동을 어느 정도 억제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사람들이 어떻게 선에서 벗어나 스스로가 용납할 수 있는 거짓말을 하는지 이해가 되실 겁니다.
    - 다시 말씀드리면,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도덕적인 이미지와 부정직함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려 애쓰게 되고, 그 결과, 우리는 어느 정도의 부정행위가 절대적으로 죄가 되는지에 대해서는 각자 자기만의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 따라서 선함은 어딘가에 어떤 선 하나를 긋는 것인데 여기서 반드시 생각해야할 점은 “경계선 혹은 기준선을 누가 어떻게 정하느냐?” 입니다. 세상에 선함을 잴 수 있는 저울은 없기 때문에, 이기적인 욕심을 채우려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스스로를 안전하게 지켜주는 객관적인 원칙을 세우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2. 선하게 사는 두 번째 가이드는 긍휼과 자비의 삶입니다.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며 약자를 돌보며 사는 것입니다.
    ● 옆에 앉으신 분께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한번 해보시기 바랍니다.
    ‘대면공화 심격천산’은 얼굴을 마주대하고 함께 대화를 나누지만 마음 사이에는 천개의 산이 있다는 뜻입니다. 오해를 풀기 위해 대화를 나누어보지만 대화를 하면 할수록 오히려 오해가 쌓이기도 합니다.
    - 듣는 편의 마음에 맞도록 말을 매끄럽게 잘 이어가면, 듣는 쪽은 겉은 화려하나 알맹이가 부실하다고 하며, 확고하고 빈틈없이 말을 하면, 듣는 쪽은 옹졸하고 조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말에 꾸밈이 많고 예를 인용하게 되면, 듣는 쪽은 내용이 공허하여 쓸모가 없다고 여기며, 요점만 간추려서 꾸밈없게 말하면, 듣는 쪽은 남의 감정만 상하게 할뿐 화술이 모자란다고 여깁니다. 두 가지 상반된 상황을 보여드리겠습니다.
    ● 첫 번째 상황은 우리가 서로 마음의 거리를 맞출 수 있으면, 우리의 인생은 외롭지 않다는 걸 보여줍니다.
    85세의 할아버지가 폐암으로 수술여부를 결정해야 하였습니다. 고령이어서 수술에 따르는 위험, 치유 가능성들을 듣고서 다음날 평온하게 수술을 받겠다고 결정하였습니다. 주치의는 깜짝 놀라며 ‘할아버지 어떻게 그렇게 어려운 결정을 편안하게 하셨어요?’ 하고 물었습니다. 할아버지가 얘기하시기를, 저녁에 신문을 보면서 잠시 졸았다가 깨보니 옆에서 할머니가 가만히 자기를 쳐다보면서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조금 있으니 가장 친한 친구, 자식, 손자, 손녀들, 스승과 제자들이 와서 자기를 따뜻한 눈초리로 바라보면서 수술에 대한 결정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을 보면서 문득 자기의 삶이 이 사람들에게 의미가 있었고 아직도 여전히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고,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기 위해 수술을 받기로 결정했다고 얘기하였습니다. 주치의가 “결정을 잘 하셨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과 참 아름다운 삶을 살고 계시네요.” 라고 했더니, 할아버지는 “그런가요? 내가 어제 만났던 사람들은 모두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니에요” 라고 했습니다. 놀라는 주치의에게 그는 웃으며 “그러나 한번 받은 것은 영원히 남는다고 생각해요. 더구나 사랑은 영원히 남는 것 이지요.”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사회적인 동물로 결국 다른 사람과 연결되고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살게 됩니다. 다만 살아가는데 사랑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 그런가 하면 미움의 감정은 사람사이의 관계에서 자신을 퇴장시키기도 합니다. 2005년 1월 29일 영국 노스햄프턴셔 주 아마추어 축구경기에서 39세의 앤디 웨인이 주심을 맡았습니다. 그는 전반전 내내 신경질적으로 휘슬을 자주 불어댔습니다. 그러다가 후반전 초에 휘슬을 불면서 레드카드를 꺼내 들었습니다. 어느 선수에게 카드를 내밀 것인가 하고 양 팀의 감독과 선수들이 긴장을 하였습니다. 아주 대등한 경기여서 레드카드를 받은 팀이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이 될 것은 뻔 했습니다. 그런데 심판은 레드카드를 자기 쪽으로 내밀고 경기장을 나가버렸습니다. 주심이 자신을 경기장에서 퇴장시킨 것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주심의 부인이 오랜 기간 중병으로 입원해 있는데다가, 경기전날 아버지가 갑자기 사망하였으며, 경기 당일에는 가장 친한 친구가 사고로 사망한 것이었습니다. 도저히 정상적인 상태로 경기를 진행할 수가 없어서 부득이 자기 자신에게 레드카드를 내밀었고 축구협회에 사직서를 제출하였다고 합니다.
    ● 작가 이청준의 작품 중에 ‘벌레이야기’라는 중편 소설이 있습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학교교사에게 유괴당하여 죽습니다. 아이의 어머니는 살인범을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어, 자살을 시도하다가 주위 사람들의 전도를 받아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사람들의 권면을 받으면서 살인범을 용서해 주어야 하겠다고 단단히 마음을 먹고 교도소로 면회를 갔습니다. 그런데 살인범은 감옥에서 전도를 받아 하느님의 용서를 받았다면서 평온한 얼굴로 할렐루야를 웨칩니다. 아이의 어머니는 교도소를 뛰쳐나오며, ‘저놈을 용서할 수 있는 권리는 나밖에 없는데 당신이 무슨 권리로 저놈을 용서해주는 것입니까?’ 라고 하나님께 항변하였습니다. 그 어머니는 사형 집행일 날 같이 자살하고 맙니다. 이 작품은 이창동 감독이 영화화하여 여러 가지 상을 탄 영화 ‘밀양’입니다. 여기서 살인범은 용서 받는 자로서 아픔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용서는 용서하는 자와 용서받는 자의 아픔이 어우러질 때 사랑과 이해로 완성이 됩니다. 생각해보면 용서의 과정은 7단계로 무척이나 어렵습니다. 서서히 용서 한다/이해함으로써 용서 한다/혼란 가운데 용서 한다/분노하며 용서 한다/조금씩 용서 한다/ 자유롭게 용서 한다/ 근본적인 감정으로 용서한다의 단계가 있습니다. 밀양의 경우는 혼란가운데 용서한다는 단계가 아니었나 생각이 듭니다.
    - 다행이도 우리 인간은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행동하는 만큼 공정함에 대한 욕구가 있고, 불공정에 대해 분노합니다. 진정 내가 타인을 위한 하고자 하는 선한 일을, 내 본능이 반대할 경우 그 본능을 우리는 어떻게 억제하는 것일까요? 생물학적인 설명은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 우리 모두가 서로 도우면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남을 돕는데 적응한 사람들이 가장 잘 살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즉, 선하게 살아야 할 이유는 사회적 문화에서 형성된 생존본능입니다.
    3. 선하게 사는 세 번째 가이드라인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죄는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처럼 되려고 한데서 시작되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에덴동산을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지 않으시고 우리 한 민족에게 주셨다면 우리에게는 실낙원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뱀이 선악과를 가지고와서 유혹할 때 우리는 뱀의 유혹에 빠져 선악과를 먹는 것이 아니고 늘 하던 대로 뱀을 잡아 먹음으로서 에덴동산을 지킬 수 있었을 것입니다.
    - 성경에는 선악과 원리와 생명나무 원리의 큰 흐름이 있는데, 인간이 선택한 선악과의 원리는 어느 것이 선이고 어느 것이 악이냐를 평가하여 정죄하는 것인 반면, 생명나무의 원리는 어느 것이 생명이냐 하는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드린 여러 가지 상황들처럼 얼핏 보기에는 악인 것 같아도 생명인 경우가 있고, 선인 것 같아도 죽음인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왜 선하게 살아야 하는지 문제가 그리 단순하지 않다고 서두에 말씀드렸습니다. 선악과의 원리로 판단하기 보다는 생명나무의 원리로 생명을 품고 살리는 쪽으로 나아가, 용서와 사랑이 풍성한 세브란스를 기대해봅니다
    - 뚱뚱한 여자가 의사에게 와서 살빼는 약을 처방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의사는 처방을 해주었고 처방전을 약국에 갖다 주자 약사가 약병을 하나 주었습니다. 여자는 ‘이약을 어떻게 복용 하나요?’ 하고 물었더니, 약사는 ‘이약은 먹는 약이 아닙니다. 서서 약병의 약을 바닥에 쏟은 다음 앉아서 약들을 모아서 다시 약병에 넣고, 이것을 하루에 세 번 하도록 처방되어 있습니다.’ 라고 설명하면서 ‘약 봉투의 주의 사항도 꼭 읽어보세요.’ 라고 했습니다. 여자가 약 봉투를 보니 거기에는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 살빼기는 각자가 알아서’라고 써 있었습니다.
    - 선한 삶은 오늘의 말씀에 처방되어 있는 것처럼 정의를 행하며, 긍휼과 자비로 이웃을 섬기고,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무엇인가를 깨닫는 것이라고 가이드되어 있지만, 선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각자가 알아서 노력을 해야 합니다. 선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합리화와 자기기만이 선을 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선하다는 것은 너무도 모호한 개념이기 때문에 정직함 또는 올바름을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 개인별 맞춤 선함이 아닌 절대 선함을 행하는 선한 세브란스 인이 되시기를 기대합니다.
    예배 시간에 웃어야 할 부분에 적절하게 웃어주시면서 즐겁게 참여하신 것도 이번 주말부터 시작되는 추석연휴의 푸근함이 있어서인 것 같습니다. 오늘 말씀드린 내용은 듀크대학의 행동경제학 교수인 댄 애리얼리 교수가 쓴 The honest truth about dishonesty (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 이라는 책입니다. 그는 ‘인간은 비합리적이지만 그 행동 패턴을 예측할 수 있다’라고 주장하면서 기발한 실험으로 이 이론을 입증하여 경제학계의 코페르니쿠스라는 별명을 얻고 있습니다. 추석기간 중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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