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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13일 말씀

등록일자
2013-02-12
  • 2013년 2월 13일 채플 말씀 영상

    < 김의식 목사 (치유하는 교회) >
     

    [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 
      

     

    베드로전서 4:7 ~ 11


     

    엊그제 우리 어린 시절을 보낸 것 같고, 결혼한 것 같고, 애들 낳은 것 같은데 세월이 얼마나 빠르게 지나가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의 남은 생은 더 빨리 지나갈 것입니다. 그것도 언제 어떻게 세상을 떠날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남은 때를 어떠한 신앙으로 행복하게 살며 마지막 때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먼저 본문 7장에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합니다. 만물의 마지막은 먼저 우주적인 종말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요즘 세상이 얼마나 타락하고 사악해졌는지 안 믿는 사람들 입에서도 “말세다! 말세다!”하는 말이 나오지 않습니까? 그만큼 주님 오실 날이 너무 가까워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해보면 우주적 종말 이전에 우리의 개인적인 종말을 경고하고 있다는 것도 있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언제 어떻게 세상을 떠날지 모릅니다. 오늘 집에 가다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날지, 아니면 집에 가서 가스 불을 켜다가 폭발사고로 세상을 떠날지, 아니면 오늘밤 집에 강도가 들어와서 살인사고로 세상을 떠날지, 아니면 밤에 잠을 자다가 심장마비나 뇌졸중으로 쓰러져서 세상을 떠날지, 내일 아침에 출근하다가 붕괴 사고로 세상을 떠날지, 화재사고로 세상을 떠날지 우리는 내일 일을 알 수 없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개인적인 종말도 너무나 임박해진 이때에 우리의 남은 때를 어떻게 살 것인가가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자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시는데 우리 인생에 종말이 왔을 때 붙잡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저 주님 붙잡고 깨어서 기도할 수 있길 바랍니다. 많을 때 우리 교인들이 순탄하고 형통할 때는 깨어서 기도 안 하다가 꼭 어려운 일이 닥치면 그 때서야 정신을 차리고 주님 앞에 나와서 눈물 콧물 쏟으면서 기도합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신앙생활입니까? 평생을 가도 우리의 기도가 끝나는 날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깨어서 기도하지 않으면 영성이 다 말라버리고 영적인 은혜와 축복도 다 떨어져 버려서 더 이상 능력 있는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어느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제가 미국 시카고에서 공부하면서 목회할 때 보니까 교포들이 고향 산천 떠나 살다보니 너무 외롭고 힘드니까 퇴근하면서 꼭 들리는 가게가 있습니다. 바로 한국 비디오가게입니다. 어느 교회 장로님도 한 주간 내내 너무 피곤하고 지쳐서 퇴근하면서 그 비디오가게에 들려서 그때 유명했던 사극인 ‘한명회’를 시리즈로 빌려왔습니다. 내일 주일 낮예배 대표기도를 맡았으니까 하나만 보고 자려고 했는데 연속극이 꼭 끝이 아슬아슬하게 끝나버리니 그 다음이 궁금해서 잘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밤새워서 한명회를 본 것입니다. 그리고 새벽녘에 잠깐 눈을 부치고 주일 낮예배 대표기도를 하려고 강단에 딱 섰습니다. 그런데 어제 밤새워서 본 ‘한명회’가 눈앞에 오락가락해서 첫마디가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장로님이 어쩔 줄 몰라 하다가 당신도 모르게 첫마디가 툭 튀어나갔는데 “주여,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그런 겁니다. 그러니 교인들이 기도하다 말고 막 웃고 장로님도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어쩔 줄 몰라 하다가 두 번째 기도가 튀어나오는데 “주여, 통촉하여 주시옵소서!”하고 만 것입니다. 이 장로님이 어떻게 기도를 마무리 했는지도 모르고 가까스로 땀을 뻘뻘 흘리며 기도를 마치고 강단에서 내려왔는데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배 끝나기가 무섭게 목사님하고 교인들보기 창피해서 그냥 집으로 도망 와서 골방에 엎드려 “하나님 아버지, 대표기도를 맡은 장로가 기도준비는 안하고 밤새워서 한명회나 봐서 이런 망신당해도 싸지 않습니까?”하고 통회 자복하고 영적으로 깨어 기도하는 장로님으로 거듭났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이이야기가 실제로 일어났었던 이야기라고 믿지는 않습니다. 아무리 이민교회 장로님이라고 그런 장로님이 계시겠습니까?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할 것은 장로님 아니라 그 누구라 할지라도 깨어서 기도하지 않으면 영적인 힘을 다 잃어버립니다. 과거에 아무리 기적적인 능력을 체험했다 할지라도 지금 기도하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성령 충만을 이어갈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깨어서 기도해야합니다. 언제 어떻게 사탄의 시험이 우리에게 닥쳐올지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시험에 당하지 않도록 위해서 기도해야 하지만 시험을 당했다 할지라도 깨어서 기도할 수 있길 바랍니다.
    한 번은 새벽기도를 인도한 후 엎드려서 기도하고 있는데 누가 옆에서 “목사님!”하고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서 눈을 떠 보니까 60세가량 된 노부부 집사님이 옆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무슨 일인지 물었더니 직장에서 매년 건강검진을 하는데 금년에 간에 이상이 있는 것 갔다고 정밀검사를 받으라고 해서 정밀검사를 받았더니 간에 직경 6cm의 암이 발견된 것입니다. 병원에서 2달 이상 못 산다고 하면서 어떤 치료방법도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다음날 새벽기도에 나와서 눈물 흘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집사님, 병원에서는 어떤 치료도 할 수 없고 포기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릴 붙잡아주고 계시면 기적적으로 치료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그러니까 이제는 하나님 앞에 매달려 기도하십시다. 매일 새벽기도 나오셔셔 기도하시고 부족하지만 강단에 올라오셔서 꼭 안수기도 받고 가십시오” 그랬습니다. 그랬더니 이 분들이 그 다음날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기도에 나오셨습니다. 그렇게 세 달째 되었을 때 병원에 가서 다시 CT촬영을 해 봤는데 6cm였던 암이 지난 3달 동안 3cm로 줄어든 것입니다. 그 후에도 이 분이 하나님 앞에 매달려 계속 기도하는 가운데 또 세 달이 지나서 병원에 가서 또 CT촬영을 해보니까 3cm였던 암이 1cm로 줄어든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하는 가운데 또 세 달이 지나 병원에서 CT촬영을 해보니까 암 덩어리가 없어져버린 것입니다.
    이 사건은 우리 교회에 기도의 불을 붙인 사건이었습니다. 제가 그 다음 주일에 교인들한테 이 간증을 하면서 예레미야 33:3의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내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들을 내게 보이리라”는 말씀을 가지고 “이제부터는 무슨 문제든지 주님 앞에 가지고 나와서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응답해 주실 줄 믿어야 한다”고 증거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다음날부터 교인들이 새벽기도에 몰려들기 시작했고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죄악 세상에서 방탕하던 남편들이 돌아오고 세상 가운데에서 방황하던 자식들도 돌아오고 직장의 문이 막혔던 남편들의 앞길이 열려지고 부도 직전에 있던 남편들의 사업이 놀랍게 일어서고 갖가지 질병으로 고통 중에 있던 성도들이 기적적으로 치료받고 감정을 풀지 못해서 불행에 사무치게 살아왔던 사람들이 다 용서하고 치유 받고 행복을 새롭게 회복하는 등 그동안 눈물 뿌리며 기도했던 기도의 응답들이 기적적으로 일어난 것입니다. 이처럼 교인들의 기도의 불이 붙으니까 성령의 불이 붙고 성령의 불이 붙으니까 기적의 불이 붙어서 온통 교회가 성령의 불도가니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뜨겁게 부흥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빌립고서 4장 6절-7절 말씀처럼 우리 생애에 어떤 문제가 부딛혀 와도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실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새벽제단을 꼭 쌓앙 합니다. 새벽 첫 시간에 주님을 만나고 주님으로부터 은혜 받고 능력 얻고 지혜 받고 축복 얻어서 행복하게 하루를 시작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 있는 삶인지 모릅니다.
    일본인 의사인 사이또 히로시 박사가 일본에서 성공하고 장수한 분들을 연구해서 「아침형인간」이라는 책을 펴냈는데 일본에서 성공하고 장수한 사람의 공통점은 그들이 다 아침형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아침 시간이 집중력이 3배나 높고 일의 능률도 3배나 높기 때문에 이 아침을 잘 활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새벽형 크리스찬이 될 수 있길 바랍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일찍 자고 새벽기도에 나오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이 거룩한 신앙의 생활화가 이루어지면 새벽에 나올 때는 힘이 들어도 끝나고 돌아갈 때의 감격은 경험해 보신 분들은 다 아실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새벽에 놀라운 기적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매일 나와서 기도하고 말씀을 받아서 영육 간에 새 힘 받아 어떤 시험도 이겨내고 말씀에 성령 충만한 가운데 하나님의 복을 누리며 행복하게 사명 감당하며 주님께 영광 돌릴 수 있길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두 번째로 8절에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라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저는 공대를 나와서 그런지 성경을 읽을 때마다 마음속에 “하나님 아버지, 왜 이 때 이 말씀을 하셨습니까?”하는 의문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 본문 말씀을 읽으면서 가진 의문은 왜 주님이 기독교의 최고의 덕목은 사랑인데 먼저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를 사랑할지니라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고 말씀하지 않고 “그러므로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다음에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라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고 말씀하셨는지가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이민 목회하는 가운데 그 의문이 다 해소되었습니다. 처음으로 담임목회를 맡았는데 너무나 목회가 힘들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제일 힘든 일은 양떼들이 목사의 진심을 모르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목사들은 양떼들이 은혜 받고 축복누리고 행복하게 신앙생활하고 사명 감당하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 이상 바랄 것이 없는데 그 목사의 진심을 믿어주지 않고 순종하지 않고 그저 반대하고 험담하면서 공격하면 너무 가슴이 답답합니다. 그러나 교회 문제를 누구에게 말할 수 없으니까 그저 새벽기도 드리면서 주님 앞에 “주여! 이 문제를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하면서 부르짖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새벽에 성령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김 목사, 김 목사는 왜 교회 문제는 놓고 기도하면서 문제를 일으키는 교인들을 위해서는 기도해 주지 않느냐?”고 하시면서 마태복음 5:44절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는 말씀을 떠올려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날 새벽부터 문제를 일으키는 교인, 그 부인, 그 자식들까지 다 이름을 불러가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사랑하게 해 달라고, 용서하게 해 달라고, 화해하게 해 달라고 매일 기도하고 나서 주일날 딱 마주치니까 저도 모르게 발걸음이 그쪽을 향해 나갔습니다. 그리고 먼저 반갑다고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고 사랑으로 끌어안았습니다. 그것은 도저히 제 감정으로는 할 수 없는 일었습니다.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사랑을 부어주시니까 그 사랑의 강권함으로 인해서 그들을 사랑으로 대하고 섬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렇게 사랑으로 대하고 섬기는 사이에 한 사람씩 한 사람씩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기도해주고 사랑해도 변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무리 사랑해 줘도 변화가 안 일어나니까 목사도 좌절이 되고 낙심이 되어 “아! 저 사람은 아무리 기도해주고 사랑으로 섬겨도 안 되는구나”하고 실망이 됐습니다. 그런데 새벽기도 후 큐티를 하며서 시편 109편을 읽는데 “나는 사랑하나 그들은 도리어 나를 대적하니 나는 기도할 뿐이라”는 4절 말씀에 눈길이 머물렀습니다. 다윗이 자기는 사랑하지만 계속 대적해오는 원수들을 향해서 고백한 시인데 그 말씀 읽다가 얼마나 은혜를 받았는지 막 가슴이 뜨거워지고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주님, 어떻게 내 심정을 그렇게 잘 아시고 오늘 새벽에 이 말씀으로 나를 위로하시나이까?”하고 은혜를 받아서 그 다음 날부터 또 힘을 얻어 그들을 위한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4년이 지나 제가 박사 학위를 받고 한국으로 돌아오려고 당회에다 사임서를 냈는데 장로님들이 “사임서는 못 받으니까 정 돌아가시고 싶으면 제직회 허락을 받고 가십시오” 그러는 겁니다. 그래서 제직회에서 “이제 제가 아무래도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랬더니 여기저기서 반대 발언이 터지는데 놀라운 것은 그 중에서 가장 간곡하게 저를 붙잡는 교인들이 바로 제가 처음 그 교회에 갔을 때 저에 대해서 그렇게 오해하고 험담하며 괴롭히던 바로 그 교인들이었습니다. 차라리 가까이 지내던 분들이 붙잡으면 뿌리치기가 더 쉬운데 그렇게 괴롭히던 사람들이 눈물을 글썽이면서 붙잡으니까 더 뿌리칠 힘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1년 동안 서로 기도하며 지낸 후 온 교인들의 눈물 소게 그 교회를 떠나왔습니다. 지금도 그 교회를 생각하면 물론 저에게 잘해주고 충성을 다했던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들도 잊을 수 없지만 처음 갔을 때 오해하고 험담하고 괴롭히다가 나중에 변화되어서 공항에까지 나와서 저의 손을 붙잡고 눈물 흘리던 교인들이 제 평생에 잊을 수 없는 교인들입니다.
    저는 그 때 왜 주님께서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다음에 무엇보다 뜨겁게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는지를 깨달았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자기 마음에 들고 자기를 사랑해 주는 사람만 사랑하지만 기도하는 사람은 아무리 누군가가 원수처럼 나를 대하고 달려들어도 “저 사람의 지난날의 상처가 얼마나 많으면 저럴까? 내가 저 사람을 붙잡아주고 사랑으로 섬겨주지 않으면 저 인생 어떻게 될까?”하는 마음에 눈물로 기도하며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다음에 사랑하고 말씀하신 줄 믿습니다.
    여러분 우리 주위에 사랑해야 할 사람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무엇보다도 정말 사랑해야 할 원수들이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10:36절에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고 말씀하셨듯이 내 집안의 안 믿는 남편이나 신앙이 연약한 자식이나 세상에 빠져 있는 시가 식구들이 원수인 것입니다. 또 교회 안에도 원수들이 있어서 여러분에 대해서 오해하고 험담하고 괴롭힙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그들을 사랑하고 불쌍히 끝까지 섬겨서 변화시켜야 할 사명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악한 사람하고 선한 사람하고 싸우면 누가 이기는지 아십니까? 질긴 사람이 이깁니다. 끝까지 버틴 사람이 이깁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선으로 끝까지 인내하면서 사랑으로 섬기고 버티면 꼭 승리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신학대학원에서 강의할 때 후배나 제자 목사님들한테 ‘약수터 목회’를 강조합니다. 약수터에 가 보면 한 방울씩 뚝뚝 떨어지는 물이 몇 십 년 몇 백 년 흐르는 사이에 약수터 바위가 움푹 패어져 있습니다. “주님, 우리 가정과 교회를 통해서 이루고자 원하시는 주님의 뜻을 이룰 수 있다면 나는 이 생명 끝날 때까지 눈물로 기도하며 사랑으로 섬기며 이 사명 감당하겠습니다”하고 기도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 모든 것들이 변화되어 있습니다. 성령님이 우리의 기도와 사랑의 섬김에 놀랍게 역사해주셔서 모든 사람들을 치유하고 변화 시켜주실 줄 믿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우리 마음 속에 그 사랑이 실천되고 열매 맺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한 중세의 성자가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너희들은 무엇을 보고 새 날이 밝아오는 것을 아느냐?” 그러니까 한 제자가 “동녘의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보고 압니다”하고 대답했습니다. “아니니라” 또 다른 제자가 “사물이 분간되는 것을 보면 새 날이 밝아오는 것을 압니다” “그것도 아니니라” 또 다른 제자가 “사람들이 일터에 나가는 것을 보고 새 날이 밝아오는 것을 압니다” “그것도 아니니라” 다 아니라고 하자 이번에는 제자들이 물었습니다. “그러면 선생님은 무엇을 보고 새 날이 밝아오는 것을 압니까?” 그랬더니 눈을 지그시 감고 있던 성자가 눈을 뜨고 하는 말이 “너희들이 대하는 모든 사람이 내가 사랑해야 할 형제로 느껴질 때 그때 너희에게 진정으로 새 날이 밝아 왔느니라” 그러더랍니다.
    내게 그렇게 상처를 주었던 남편도, 마누라도, 시가식구들도, 자식들을 보면서 내 가슴이 찡하고 눈물이 핑 돌고 내가 저들을 사랑해 주지 않고 섬기지 않으면 누가 하겠는가 하며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사랑의 마음이 갈 때 우리는 진정으로 주님 안에서 거듭나고 성령 충만함을 회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 와서도 우리에게 상처 주고 괴롭히는 그런 교인이 있어도 “하나님 아버지 저들이 지난날 많은 상처가운데서 고통을 겪어서 저런데 제가 저들을 사랑으로 섬기지 않고 저들을 성령으로 감동시키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저라도 끝까지 참고 사랑으로 섬기게 하여 주시옵소서!”하고 불쌍히 여기고 사랑으로 섬길 때 우리는 진정으로 주님 안에서 거듭나고 성령 충만함을 회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 세상사람들이 우리에게 손해를 끼치고 고통을 안겨다주어도 “하나님 아버지, 저들을 제게 붙여주셨는데 제가 끝까지 사랑으로 섬겨서 저들이 주님을 믿고 주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다면 제가 끝까지 저들의 영혼에 대해서 책임지고 사랑하며 섬기게 하여 주시옵소서”하고 그들을 위해서 눈물로 기도할 때 우리에게 이미 주님 안에서 새 날이 밝아온 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를 통해서 이 사랑을 회복하고 이 사랑을 끝까지 실천함으로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될 줄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9절-10절에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라고 말씀합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므로 선한 청지기 같이 봉사하라는 것입니다. 청지기는 주인이 아니라 관리인입니다. 우리 인생에 우리가 주인 된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의 생명의 주인은 주님이시기 때문에 주님이 불러 가시면 어느 누구도 거역할 자가 없습니다. 우리의 건강도, 물질도 우리가 주인이 아닙니다. 우리 인생을 돌이켜보면 우리가 주인 된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욥은 욥기 21:21절에서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으로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이시오 거두신이도 여호와이시오니 여호와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 지니다”고 고백하지 않습니까? 주님이 주셨다 거둬간들 우리는 그걸 붙잡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욥은 그 많은 재산 다 잃어버리고 열 자녀가 한꺼번에 다 몰살당하고 심지어는 자기 건강 다 잃어버린 다음에도 그런 위대한 신앙의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그런 청지기 신앙이 있었기 때문에 욥은 그 시험이 다 끝난 다음에 모든 걸 갑절로 회복하게 됩니다. 재산도 갑절로 축복 받게 되고 자녀들도 열 자녀는 천상에, 열 자녀는 지상에 갑절로 얻게 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수명도 욥이 시험당할 때 70세였는데 갑절의 축복을 받아서 140세를 더 살아 210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청지기 신앙으로 살 때 한 때는 고난당하고 고통 겪고 불행해져서 인생이 끝난 줄 알았는데 갑절의 축복으로 일어서는 것을 보십시오. 지금 말세에 필요한 신앙은 바로 그 청지기 신앙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주님 앞에 그 청지기 신앙으로 봉사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목회할 때 한 권사님이 총여전도회장을 맡았는데 건강이 안 좋다며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권사님,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누가 주관하십니까?”하고 물으니까 “하나님이요!”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아셨으면 됐습니다”하고 돌려보냈습니다. 그리고 해가 바뀌었는데 어느 주일에 또 그 권사님이 찾아오셨어요. 그리고는 “목사님, 지난 1년 동안 봉사하는 사이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저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몸의 모든 병의 통증이 깨끗이 사라져 버렸습니다”라는 고백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우리의 생명과 건강을 주관하시니까 몸 바쳐 헌신하고 충성을 했더니 그 건강을 기적적으로 회복시켜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봉사의 축복입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교인들한테 이렇게 말합니다. “몸이 아프고 힘이 들수록 교회 나와서 예배도 드리고 봉사도 하십시오. 그리고 집에 돌아가면서 하늘 쳐다보고 꼭 한마디 하십시오. 하나님, 나 이렇게 아파도 나왔습니다” 그러면 주님이 내려다보면서 뭐라고 그러겠습니까? 주님이 감동 받아가지고 그 건강 회복시켜 주시면 기적적으로 치료될 줄 믿습니다. 적어도 이 믿음으로 우리 몸을 바쳐서 주님과 고통당하는 이웃들을 위해서 봉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질도 마찬가지입니다. 움켜쥐어도 남는 것이 없는데 그저 바치고 나누고 베푼 사람들은 놀라운 복을 받습니다. 제가 시카고 연합장로교회에 부임해서 한 달 정도 되었을 때 헌금보고서가 들어왔는데 선임 장로님 이름이 십일조 명단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상하다 생각되어 그 장로님께 한번 물어봤더니 머리를 긁적이며 하는 말이 “목사님, 사실은 제가 큰 사업을 하다보니까 십일조 계산하기가 아주 복잡합니다. 그래서 그때그때 주정헌금으로 나눠서 냅니다” 그러는 겁니다. 여러분, “십일조 계산하기 복잡하면 주정헌금으로 나눠서 낼지니라!”는 말이 성경 어디에 있습니까? “너희가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 내 창고를 채울지라 그리고 하늘문 열고 복을 붓지 아니하나 시험해보라”고 그랬지 않습니까? 그래서 제가 “장로님, 정 그러시면 십일조 계산하기 쉽게 수입을 팍 줄여버리도록 기도해야겠습니다” 그랬더니 “아이고! 목사님,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제가 십일조 하면 될 거 아닙니까?” 그러는 겁니다. 그리고 몇 달 뒤에 전화가 왔는데 “목사님, 제가 처음 시카고에 이민 와서 공장청소부로 일했던 시절을 생각해보니까 지금 엄청난 복을 받았는데 제가 그 동안 너무 교만하고 욕심이 많았던 걸 알았습니다. 이제 십일조 내는 것만으로 부족해서 어떻게 주님께 보답을 할까 생각한 건데 목사님이 심방하시다가 가난한 교인을 만나거나 어려운 신학생을 만나거나 또 도움이 필요한 선교사님들을 만나면 꼭 전화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얼마든지 제가 후원하겠습니다” 그러는 겁니다. 그리고는 어려운 교인들이나 또 유학 온 신학생들이나 선교사님들을 얼마나 많이 도왔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제가 떠나올 때 지난 몇 년 동안 세 배로 물질의 축복을 받았다는 간증을 했습니다. 그 때 제 마음속에 누가복음 6장 38절의 “주라 그리하면 너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에게 안겨주리라”는 말씀에 생각났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고통당하는 이웃들을 위해서 물질을 쓰면 하나님이 다 기억하십니다. “네가 그렇게 선한 일에 많이 쓰니 내가 천 배나 만 배나 갚아 주리라”하고 채워주십니다. 믿음으로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복을 못 누리지만 믿음으로 실천한 사람은 그 복을 누립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11:6절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가는 자는 받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그 믿음으로 살 때 하나님께서 틀림없이 복을 주고 귀하게 쓰시고 크게 영광 얻으실 줄 믿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주님과 고통당하는 이웃들을 위해서 헌신하고 봉사하면 우리 생애뿐만 아니라 우리 자손들까지도 그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확실히 간증할 수 있는 것은 저의 집안 이야기입니다. 저의 아버지는 일제 강점기 때 저기 남쪽 땅 끝 마을의 어렵고 힘든 가정에서 9남매의 3번째로 태어나셨습니다. 위로 형 두 분이 병에 걸렸는데 치료도 못하고 세상을 떠나버려서 장남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나왔는데 거기 있어 야 농사지을 논밭도 없어서 할 수 없이 일자리를 찾아 고향을 떠난 것입니다. 그런데 해방 직후에 일자리가 없어서 며칠씩 굶으면서 한 군소재지에 왔는데 오갈 데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저기 녹십자 마크가 보이는데 거기 가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무작정 들어가 원장선생님을 붙잡고서 그저 숙식만 하게 해 주면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일하겠다고 사정을 하니까 원장선생님이 불쌍하게 보시고 허드렛일을 도우면서 집에 머물라고 했습니다. 대신 교회를 나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알고 보니까 그 군에서 제일 큰 교회 장로님, 권사님 가정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 아버지가 너무 감격해서 그 날부터 병원에서 온갖 굿은 일을 도맡아서 열심히 하니까 원장선생님이 감동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공부를 시켜줘 약종상 시험을 봐서 약방을 열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그 해 그 도에서 18명 약종상 면허를 내 주는데 2000여 명이 몰려와서 기도하면서 시험을 봤는데 놀랍게도 합격을 한 것입니다. 그걸 보는 순간 “이제 저기 고향에 있는 부모형제들을 먹여 살릴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에 너무 감격해서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더랍니다. 그래서 원장선생님이 도와주셔서 약방을 차리고 보니까 그 지역에 교회가 없어서 전도사님을 모셔다가 교회를 개척한 것이 바로 저희 고향교회입니다. 그래서 총각 집사로서 교회에 일이 생기면 약방 문 닫아놓고 가서 교회 일하고 교회 일 마치면 약방에 돌아와서 문을 여는데도 하나님이 복을 주시니까 날로 잘 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원장선생님이 긴히 상의할 일이 있다고 해서 갔더니 원장선생님 내외분이 큰딸과의 혼인을 묻더랍니다. 조수로 일하던 사람이 병원 원장님 딸과 결혼을 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가 엄청난 복을 받아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결혼하자마자 산골에 있는 부모형제들 전부 모시고 와서 도시에다 살림집 차려주고 동생들 초등학교부터 다 뒷바라지 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원장 선생님한테 배웠듯이 “내가 너희들 대학원 공부할 때까지 다 밀어줄 테니까 나를 따라서 교회에 나가야 한다”고 해서 집안이 그 날 이후로 전부 복음화 되어서 아버지 형제 밑으로 장로님이 7분 나오고 권사님이 5분 나오고 목사인 저까지 나오고 나머지는 다 집사입니다. 작은어머니는 우리교단의 전국여전도회 연합회 회장까지 지냈으니 우리 집안이 얼마나 영적인 은혜를 받았습니까? 세상적으로도 의사, 약사, 교수로 다들 풍족하게 살고 있습니다. 우리 집안이 전통 있는 집안도 아니고 실력 있는 집안도 아니고 내세울 것 아무 것도 없는 집안이었는데 그 산골의 가난한 빈농의 집안이 어떻게 이런 은혜와 축복을 누릴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 집안을 자랑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비결을 여러분께 간증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저희 집안 가훈은 첫째, 하나님 중심 둘째, 성경 중심 셋째, 교회 중심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렸을 때 주일날 학교에서 나오라고 하면 우리 아버지는 절대 안 보냈습니다. 개근상 못 받아도 되고 우등상 못 받아도 되니까 주일은 하나님을 거룩하게 지키면서 예배드리고 봉사하는 철저한 믿음으로 사는 본을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위한 헌신을 아주 가장 우선으로 여기시고 물질도 아까워하지 않아서 십일조 등 갖가지 헌금도 제일 많이 하셨습니다. 저희 고향교회가 세 번 건축을 했는데 그때마다 저희 아버지가 대지를 헌납하고 건축비 70%를 아버지가 다 부담을 했습니다. 교인들이 돈이 없어서 헌금이 모아지지 않으니까 헌금작정 된 거 빼고 나머지는 전부 저희 아버지가 부담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저희 어렸을때는 가난한 사람들 많았는데 어려운 교인들을 심방 가면 맨 나중에 나오면서 누런 봉투를 하나씩 이부자리 밑으로 쑥 끼워주고 나왔습니다. 그 때마다 제 마음속에 도와주려면 돈을 도와주지 왜 노란봉투를 하나씩 끼워주고 올까 그랬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아무도 모르게 구제를 했던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주의 종도 정말 잘 섬겼습니다. 저희 어렸을 때만 해도 정말 먹을 것이 없어서 명절에나 한 번씩 고기구경하고 명절에나 한 번씩 새 옷 얻어 입고 명절에 한 번씩 일 년 묵은 때를 목욕탕에 가서 벗기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저희 아버지가 큰 약방 도매업을 하다보니까 서울에 있는 제약회사나 도매상에서 하루에도 적어도 한 군데 이상 선물이 들어오는데 그때 선물은 주로 먹을 거였습니다. 아마도 지금부터 한 사오십 년 전에 바나나, 파인애플, 오렌지, 미제 과자 중국 빵 일본 모나카 먹고 산 사람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런 귀한 것들이 들어오면 저는 어린 마음에 “오늘 맛있는 거 먹겠다!”하고 기다리고 있으면 해질 무렵에 저의 어머니가 예외 없이 저를 부릅니다. “의식아, 이거 목사님 댁에 갖다드려라”하고 싸서 십니다. 들어오는 선물 중에서 제일 비싸고 제일 진귀하고 제일 맛있는 것은 다 목사님 댁에 갖다드리라고 하니 제가 얼마나 열불이 났겠습니까? 그거 갖다 주면서 아까워서 어린 마음에 투덜투덜하면서 “목사 혼자 다 처먹고 배 터져 뒤져버려라!” 이렇게 목사 욕을 하다가 목사가 되어서 버렸습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우리 부모님이 그처럼 정말 주의 종을 잘 모셨더니 우리 자손들이 복을 받은 것입니다. 부모님도 80이 넘도록 건강하시고 우리 자손들이 모두 다 잘 되었습니다. 이 정도면 얼마나 복을 받았습니까? 그 산골에서 태어난 집안이 지금 돌이켜보면 부모님의 헌신과 봉사의 복을 부모님들의 여생뿐만 아니라 자손들까지 누리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남은 여생 우리의 여생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우리 자녀 손들 위해서 봉사의 씨앗을 뿌릴 수 있길 바랍니다. 그러면 틀림없이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져오리라”고 약속하셨듯이 여러분의 여생과 자손들도 풍성한 복의 열매를 거두게 될 줄 믿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정신 차리고 헌신하고 뜨겁게 사랑하고 선한 청지기 같이 봉사할 수 있는 날들이 많이 남아 있는 거 아닙니다. 갈수록 살아있는 날들이 줄어들고 그것도 언제 떠날지 모릅니다. 우리가 올 때는 순서가 있었지만 갈 때는 순서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시는 대로 가야 합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하나님이 부르시면 오늘이라도 떠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에 우리 신앙생활의 문제는 이 땅에 천년만년 살 것처럼 착각하고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내 삶이 신실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 앞에 충성할 수가 없습니다. 신앙생활을 가장 우선으로 살지 못합니다. 세상일과 육신의 일에 매이고 물질 욕심에 메이다 보니까 하나님의 영광 다 가리고 주의 사명도 감당하지 못하고 주의 영광도 드러내지 못하고 맙니다. 우리가 살면 얼마나 살겠습니까? 우리의 남은 때를 어떻게 살아야 되겠습니까? 만물의 마지막이 가깝습니다. 그러므로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며 기도할 수 있길 바랍니다. 무엇보다 뜨겁게 서로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우리가 영원히 복되고 행복하고 귀하게 영광 돌릴 수 있는 삶인 줄 믿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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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04월 08일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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