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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 3일 말씀

등록일자
2013-04-03
  • 2013년 4월 3일 채플 말씀 영상

    김흥규 목사(내리교회)

    [ 보는 것이 믿는 것이 아닙니다 ]

    요한복음 20:24~29
     


    <여드레 날이 지난 뒤 찾아오신 부활의 주님> 이미 부활주일이 지났습니다. 부활절이 지난 뒤 읽기에 더 없이 좋은 본문이 요 20: 24-29절입니다.

    이것은 본문 26절의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라고 하는 말씀이 예수님이 부활하신지 꼭 팔일 째 되는 날에 일어난 사건을 다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는 요한복음에 있는 말씀을 중심으로 예수 부활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살펴보고자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보도하는 복음서는 항상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는 사실과 이것을 전달하는 말을 강조합니다.

    오늘 말씀 바로 전에 나오는 요 20: 18절을 보세요.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 이와 같이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직접 목격한 사람들이 목격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식으로 널리널리 퍼져나갔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목격한 사람들은 본 것으로 그치지 않고, 반드시 자기가 본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먼저 19-23절을 봅시다.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한 세 명의 여인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제자들에게 자기들이 직접 보았던 부활의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처음에 믿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무서워서 문을 걸어 잠그고 숨어 있었습니다.

    바로 그 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 가운데로 들어오셨습니다. 그러면서 “샬롬!”,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고 인사를 하셨습니다. 반가운 인사말을 건넨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두 손의 못자국과 옆구리의 창자국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날 그 저녁에 그 자리에 있었던 제자들은 다 믿었고 너나없이 기뻐했습니다. <교회: 용서하는 공동체> 그 다음에 21-23절은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들을 세상에 내보내시는 commission, 즉 사명을 위임하시는 내용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생기를 코에 불어넣으셔서 사람을 만드신 것처럼, 성령은 숨, 호흡과 관련이 있습니다. 예수님 역시 제자들을 향하여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부활을 직접 목격한 사람들은 얼마 되지 않지만 성령은 누구나 다 받을 수 있습니다. 부활의 증인이 되는 것은 꼭 부활을 두 눈으로 목격해야지만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누구나 다 부활의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신 것처럼 부활하신 예수님은 다시 제자들을 세상에 내보내시는데 예수님이 부탁하신 것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이제 성령 충만을 받은 제자가 가장 먼저 할 일은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해주는 일입니다. 만일 우리가 누구든지 그 사람의 죄를 용서하면 그 죄가 용서됩니다.

    하지만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주지 않으면 그 죄는 그대로 남아있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는 교회 공동체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이웃의 죄를 용서하는 것입니다. 물론 교회는 옳고 그름을 따지는 도덕 공동체가 되어야 하겠지요. 하지만 옳고 그름을 따지는 도덕과 윤리는 교회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어떤 기관 어떤 공동체도 옳고 그름을 따지는 상세하기 이를 데 없는 도덕법이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이 갖지 못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용서하는 일입니다. 만일 교회가 용서하는 일을 제쳐놓고서는 다른 사람의 죄를 묻고 따지는 정죄하고 심판하는 공동체가 된다면 예수께서 기뻐하시는 공동체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교회는 정의보다 사랑을 정죄보다는 용서를 앞세우는 공동체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의심하는 도마에서 고백하는 도마로> 그 다음에 아주 중요한 말씀이 오늘 봉독한 24-29절 말씀입니다.

    놀랍게도 도마는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 나타나셨을 때 현장에 없었습니다. 성도는 반드시 있어야 할 곳에서 제 자리를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도마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첫 번째 기회를 놓쳤습니다. 꼭 있어야 할 현장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도마에게 제자들이 부활의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보았소!” 제자들이 부활의 소식을 전해주었을 때 도마는 믿지 않았습니다. 25절을 봅니다.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않겠노라 하니라.” 도마는 의심이 많은 제자입니다. 꼭 두 눈으로 직접 보고 두 손으로 직접 만져본 것만 믿는 실증주의자이지요. 요한복음에는 도마에 대한 이야기가 오늘 말씀을 포함해서 꼭 세 번 나옵니다. 그런데 이 세 말씀의 공통점은 도마가 좀 별난 사람이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먼저 요 11: 16절에 보면 예수께서 나사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나사로의 집에 가시는데 그 때 도마가 앞장서서 바람을 잡습니다. “우리도 주님과 함께 죽으러 가자!” 굉장히 용기 있고 배짱이 넘치는 말이지요. 그 다음에 요 14: 5절을 보면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하고, 주님이 제자들을 위하여 처소를 마련하기 위하여 갈 곳에 대해서 질문을 던집니다. 이와 같이 도마는 평소에도 딱 부러지는 성격을 가진 사람입니다. 대충대충 넘어가는 사람이 아니라 반드시 확신이 가야지만 믿고 행동에 뛰어드는 사람입니다. 도마는 결코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정직한 회의론자입니다. 속으로 믿지 않으면서도 말로만 믿는다고 외치는 사람보다 훨씬 더 낫습니다. 갈릴레이 갈릴레오는 의심은 발견의 아버지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도 정직한 회의를 품는 것은 불신앙이 아니라 더 확고한 믿음으로 나아가는 길잡이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스코틀랜드의 존 녹스는 불굴의 종교개혁자였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도 낙심과 분노로 가득 찬 세월들이 있었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찬송가 585장의 “내 주는 강한 성이요”을 작사한 반석 같이 굳센 종교개혁가였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믿음에 있어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루터도 1주일 내내 믿음을 잃어버리고 하나님을 향하여 의심으로 괴로워한 적이 있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절대로 외부에서 강요한다고 해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정직한 회의를 거쳐서 따져보고 살펴볼 때 더 확고한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도마가 두 눈으로 직접 보고 두 손을 직접 만져봐야지만 믿겠다고 했을 때 부활을 믿었던 제자들이 이런 도마를 내치지 않았습니다. 의심하는 제자를 자기들의 모임에 끼워주었습니다. 참 아름다운 일이지요! 오늘 우리도 우리와 똑같이 믿음이 굳세지 않다고 해서 왕따를 놓아서는 안 됩니다! 정직하게 의심하는 형제자매들도 사랑의 마음으로 품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들이 우리와 같이 확고한 믿음에 이를 때까지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어느 목사님이 설교 도중에 성도들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차가운 바다는 썰렁海입니다. 그럼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바다는 어디일까요?” 성도들이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리자 “그곳은 사랑海입니다!” 라고 답을 알려주었습니다. 어떤 여자 집사님이 꼭 한 번만이라도 남편에게 “사랑해”라는 말을 듣고 싶어 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온갖 애교를 부리면서 목사님과 똑같이 남편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여보, 내가 문제를 낼 테니까 한 번 맞혀봐요. 세상에서 가장 차가운 바다는 ‘썰렁해’래요. 그럼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바다는 어디 게요?” 남편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생뚱맞은 질문을 다 한다싶어서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러자 아내는 코맹맹이 소리로 힌트를 주면서 말했습니다. “아앙! 그럴 때 내게 해주고 싶은 말 있잖아? 그걸 생각해봐!” 그러자 남편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웃음을 지으며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열바다!” 우리 교회는 처음 제자들이 의심하는 도마도 왕따를 놓지 않고 품어주고 사랑했던 것처럼, 그런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도마가 예수님에 대해서 의심을 한 지 팔일이 지났습니다. 제자들이 다 함께 모여 있었을 때 도마도 함께 있었지요. 바로 그 때 의심하는 도마의 마음을 아신 예수님이 도마에게 손가락을 내밀어 주님의 손을 만져보고 옆구리의 창자국도 만져보게 했습니다. 그러면서 따끔한 충고도 겸하여 주십니다.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도마가 예수님이 시키는 대로 확인을 했습니다.

    틀림없이 못자국 창자국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제야 도마가 외칩니다.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28절).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 중에 이런 고백을 한 사람은 도마 한 사람입니다.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 의심자(Doubter)가 고백자(Confessor)가 된 것이지요! 정직한 의심을 거쳐서 더욱 더 확고한 신앙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신학자 폴 틸리히가 한 말입니다. “진리 위에 서지 않은 무모한 옛신앙은 죽어야만 한다. 의심에 의해서 삼켜져야만 한다. 그런 다음에서야 비로소 진리 위에 선 새롭고도 더 깊은 신앙이 태어날 수 있다.” 도마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지요! 오늘 우리에게도 이와 같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나의 구주요,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할 수 있는 확고한 신앙이 있어야만 할 것입니다. 이렇게 일일이 따져보고 확인한 다음에 신앙을 갖게 된 도마에게 또 한 가지 점잖은 충고를 주십니다.

    29절을 봅니다.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되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을 직접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보지 않고서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을 수만 있다면 우리가 훨씬 더 복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흑인 인권 운동의 아버지 마르틴 루터 킹 목사님이 “신앙이란 계단 전체를 볼 수 없는 상태에서 첫 번째 계단 위에 첫 발을 내딛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보지 못했다고 할지라도 믿음을 가지고서 나아가면 결국 부활의 주님을 만나는 역사가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도마는 나중에 “도마복음”과 “도마행전”을 기록한 성서 작가로 유명해졌습니다. 일설에 의하면 도마는 멀리 인도에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예수께서 부활승천하신 뒤 제자들이 어느 곳에 가서 복음을 전할 것인지 제비뽑기를 했습니다. 그 때 도마에게 떨어진 선교지는 머나먼 인도였습니다.

    처음에 도마는 몸이 약하다면서 순종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꿈에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설득하시자 인도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도마는 오늘날 남인도 교회의 아버지로 역사에 남게 되었습니다. 도마는 결코 쉽게 확신이 서고 쉽게 순종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일단 모든 것이 옳다고 판단하면 무슨 일이든지 확실하게 해내는 충성된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일을 너무 쉽게 성급하게 시작했다가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들보다 도마가 훨씬 더 훌륭한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절이 벌써 지났습니다. 아직도 부활이 믿어지지 않습니까?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언젠가 믿겨질 날이 올 것입니다. 때로 정직한 회의가 어설픈 믿음보다 낫습니다. 예수님은 의심하는 도마도 사랑하셨습니다. 도마의 의심을 신으로 바뀌도록 도와주셨습니다. 하지만 가장 복된 사람은 직접 보지 않고서도 믿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그런 보지 않고서도 믿을 수 있는 복된 사람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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