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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29일 말씀

등록일자
2013-05-29
  • 2013년 5월 29일 채플 말씀 영상

    한인철 원목 (교목실장 )

    [ 그 분을 찾습니다. ]

    마태복음 11:2~6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남의 입으로 먹고 사는 사람이 누구인지 아시죠? 치과에서 일하는 사람들 입니다.


    그런데 내 입으로 여러 사람 앞에 말씀을 전하려니 어렵습니다. 앞으로 모든 팀장, 파트장님들도 기회를 드려서 말씀하도록 하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예배에 설교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도 알게 될 것 같습니다.
    또 한 가지 힘든 것도 여러 증인들(직원들) 앞에서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10년, 20년 함께 살다보니 저를 너무 잘 알고 있기에 “당신이나 잘해요”라는 말을 들을까봐 걱정됩니다.


    사실 성경에 기록된 것을 읽고 말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삶에 적용하기는 힘듭니다.
    오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나)보다 남을 낫게 여겨라!”
    우리말에 낫게와 낮게가 다르죠? ᄉ 과 ᄌ 의 차이이지만 완전히 반대의 뜻이 있습니다.


    ᄉ의 낫게는 길게 발음을 하고,‘더 귀하게’라는 뜻이지요. 길게 인내하며 한번이 아니라 여러 번 참아주고, 마음 깊은 곳에서 이해하고, 겸손을 뜻합니다.
    ᄌ의 낮게는 짧게 발음을 하고,‘더 못하게’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도, 짧게 발음하다 보니 즉흥적이고 금방 끝나는 배려이며, 형식적이고, 그래서 교만, 우월을 뜻합니다.


    지난주 치과대학 및 병원 예배 때 원목실에서 강사 목사님을 초청하셨는데 예배 시작 전에 그분이 “저를 기억하시겠어요? 31년 전 청평 후송병원의 방원철입니다”라고 소개할 때 그 강사목사님을 다시 생각에서 기억해니기까지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군의관으로 82년 4월말에 부임해서 군목이 안 계신 병원 교회를 함께 성실히 섬겼던 병사였기 때문입니다. 내가 잘 기억할 수 있었던 것은 급성 간염으로 후송되어 와서 고난주간 릴레이 기도회를 빠진 사람의 몫까지 환자의 몸으로 끝까지 지키면서 자기보다는 남을 낫게 여길 줄 아는 20대 초반의 젊은 신학생 환자였기 때문입니다. 이제 31년이 지나 교회를 멋지게 목회하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생각됩니다.


    첫째 그런데 왜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길 수 없는 것일까요? 학생, 함께 일하는 동료, 환자들을 향해서 말입니다.
    근본적으로 인간은 이기주의적 유전자(selfish gene)를 가지고 있으므로 남을 낫게 여길 수 없습니다.
    경쟁사회 속에서 내가 남보다 나아야 이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학생들은 전국 석차 0.01%내에 들어야만 입학할 수 있는 수재들인데 시험을 봐서 등수를 매기는 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서로 도와야 할 동료가 아니라 경쟁자입니다. “적자생존”“약육강생”의 원리입니다. 그러다 보니 낫게 여기면 안 되지요.


    그런데 2절에서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을 품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학생들 중에 성적이 어려운자, 성격적으로 적응하기 어려운 학생에게 mentor제도를 만들었습니다. 조금만 거들어 주면 할 수 있습니다. 나의 일을 돌아볼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주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영혼이 있는 교육이요. 공동체로서의 교육이 아니겠습니까?
    둘째로 그러면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정말 이것이 가능할까요?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것은 자력 종교인은 불가능하다. 스스로 노력해서, 인내심을 가진 사람, 선천적으로 친절한 사람, 교육을 통하여서 어느 정도는 가능합니다.
    5절에서 8절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그런데 나는 아무리 보아도 그렇게 살 수 없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저 같이 부족하고, 할 수 없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될 수밖에 없지요.


    갈라디아서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 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어요. 교회를 다니면 그 교회 교인일수는 있으나 그리스도인은 아닙니다. 그래서 교인으로서는 남을 낫게 여길 수 없어요.


    우리 병원에 오셨던 선교사들은 냄새나고, 추하고, 미개한 조선 사람을 낫게 여길 수 있었을까요? 불가능 했을 겁니다. 그러나 가능하게 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그들 안에 사셨기 때문에 불가능을 가능하도록 하셨을 것입니다.
    우리 학교와 병원은 분명 이 일을 해낼 수 있습니다. 다른 세상의 어떤 기관에서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우리 속에 그리스도의 영으로 채워져 그리스도의 사람이면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치과대학 어느 교수님으로부터 한주 전에 소포와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 내용의 일부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금년 3월 초 저는 악성림프종이 직장 내면에 약 3cm 크기로 별도로 전이 재발되어 또다시 항암 화학 요법을 시행 중입니다.
    암이 재발되어 주위분들께 큰 심려를 드려 죄송합니다.
    부득이 진료업무는 못하고, 전공의와 치위생학과 강의 등을 쉬엄쉬엄 하면서 빈혈과 백혈구 감소증 등 항암제 부작용과 2차적 감염방지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마침 이번 스승의 날에 선물을 어느 분께 드릴까 고심하던 중에, 특히 학장님께 드림이 적절할 듯해서 보내드립니다.
    저도 나이가 60세에 접근되니 주위에 암으로, 중풍, 당뇨 등으로 고충을 겪는 분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No pains, No gains"처럼 넓고 길게 인생살이를 보는 안목도 생기고, 삶이 진지해지면서, 감사 찬송이 나올 때가 많음은 하나님의 큰 은혜라 여겨집니다.
    비록 암은 재발되어도 삶을 바르게 성실히 살도록 노력할 것을 다짐해 봅니다. 항상 기뻐하면서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면서......

    이 선물과 편지를 받고 오히려 건강한 내가 챙겨야 하는데 투병 중이면서 자신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모습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연세의료원에 이런 분들의 마음이 있기 때문에 그 누구도 넘볼수 없는 영혼이 있는 의료 기관으로 굳건히 서게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영광 받는 연세의료원과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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