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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04일 말씀

등록일자
2013-12-04
  • 2013년 12월 04일 채플 말씀 영상

    이영훈 목사 ( 높은뜻하늘교회 )

    [ 그림자사명을 극복하라 ]

    마테복음 4:1-11

    - 그림자사명을 극복하라 -

    미국 북동부 대서양 연안에 있는 6 개의 주을 통틀어 뉴잉글랜드라고 부릅니다 . 이렇게 불리운 이유는 이름 그대로 17 세기초 즉 이민 초기 영국계 이민자가 많이 정착한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 그런데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미국 북동부 해안선은 굉장히 복잡하고 암초가 많아서 이민 초기 많은 배들이 난파당하거나 조난당했다고 합니다 . 그래서 영국의 청교도들이 대서양을 횡단해서 신대륙으로 들어와서 처음으로 한 일이 배들이 복잡한 해안선과 암초로 어려움을 당하지 않도록 해안선에 등대를 세우는 일이었다고 합니다 . 그러나 날씨가 좋지 않고 폭풍우가 몰아치면 등대의 불빛도 잘보이지 않아 조난당하는 배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마을 마다 스스로 구조대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

    전해지는 이야기로 처음 등대가 세워진 곳에 한 허름한 창고가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곳을 인명구조센터로 사용하기로 시작했습니다 . 그래서 그곳에 인명구조용품 구조보트 비상식량 구조활동에 필요한 것들을 갖추어놓았습니다 . 점점 인명구조센터는 구체적으로 조직화되어서 서로 번을 서가면서 구조대활동을 하였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많은 인명들이 그들의 활동을 통해서 구조받게 되었습니다 . 계속해서 자원봉사자들이 더욱 늘어나게 되었고 또 많은 사람들이 구조대를 위해서 기부금을 내기도 했습니다 . 점점 인명구조센터의 활동이 늘어나면서 전문화된 구조훈련도 받고 조직도 갖추게 되면서 사람들 사이에는 허름한 창고를 헐고 좀더 규모있고 제대로 된 인명구조센터를 짓는게 좋겠다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 대부분 사람들이 이 이일을 좋게 여기고 기부금과 건축기금을 내게 되었고 그 결과 해안가에 등대 옆에 멋진 인명구조센터를 세울수 있었습니다 . 이렇게 멋진 건물을 져놓으니까 자연히 사람들이 멋진 등대와 구조스테이션을 보러 원근각처에서 몰려오게 되었고 이런 저런 행사를 치르는 장소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고 이것을 관리하기 위해서 운영위원회가 조직되고 건물사용 유로회원을 모집하기까지 이르렀습니다 .

    그러던 어느날 대서양 연안에 큰 폭풍우가 몰아쳐서 큰 배가 조난당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 그래서 순식간에 많은 사람들이 이 인명구조센터로 밀려와서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다음날 이 센터에서 한 오래된 회원의 결혼식이 준비되고 있었습니다 . 하지만 갑작스런 조난상황으로 모든 결혼예식의 장식과 준비가 엉망이 되어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 그러자 그곳에서 결혼식을 치르려고 했던 회원은 센터 운영위원회에 강력한 항의를 하였습니다 . 아무튼 이러한 일이 지난뒤 인명구조센터 운영위원회에서는 회원들의 항의와 불만이 늘어가는 상황을 어떻게 할 것인가 고심 끝에 이 인명구조스테이션에서 더 이상 실제적인 인명구조활동을 하는 것은 어렵다고 판단하고 회원제로 운영하는 사교클럽으로 전환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 이 소식을 전해들은 일부 마을 사람들과 뜻있는 사람들은 인명구조를 위해 세워진 원래의 목적대로 건물이 사용되어져야 한다는 의견을 내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 그래서 결국 몇몇 뜻있는 사람들이 그 등대로부터 멀리떨어진 또 다른 등대 옆에 허름한 창고를 빌려서 인명구조활동을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

    그런데 의미심장한 점은 그곳에서도 이전 인명구조센터에서 일어난 일과 똑같은 일들이 반복되어서 일어났다는 점입니다 . 그 다음 등대에도 그리고 또 그 다음 등대에도 ...

    그래서 결과적으로 지금의 미국 북동부해안 멋진 등대 light house 클럽들이 이렇게 생겨났다고 합니다 .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각자의 인생의 목적과 사명을 주셨습니다 . 또한 각각의 사명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더큰 사명과 목적을 이루어가기 위해 크고 작은 공동체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 가정과 직장과 일터 교회와 같은 공동체가 바로 그것입니다 .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종종 하나님이 주신 본래의 고귀한 사명이 흐릿해지거나 길을 잃어버려서 그 자리에 거짓되고 왜곡된 사명이 자리잡게 되는 경우입니다 .

    저는 오늘 이 왜곡되어지거나 거짓된 사명을 그림자 사명 이라는 이름으로 소개하려 합니다 . 이 ‘ 그림자사명 ' 이라는 말은 미국시카고에 위치한 윌로우크릭에서 개최한 2008 년 리더십서밋에서 존 오트버그란 미국목사님의 비전과 사명에 관한 강의를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

    하나님이 우리 각자 ( 개인에게든 혹은 공동체에게든 ) 주시는 본래의 사명은 참 고결하고 가치있는 것인데 그것을 지켜낼 지혜와 용기와 결단이 무디어질 때 그 그림자사명이 고개를 쳐들고 본래의 사명을 폐기시키거나 다른 방향으로 왜곡시킨다는 것입니다 .

    앞서 인명구조센터가 사교클럽으로 변한 이야기를 드렸습니다 . 물론 처음부터 그렇게 하려고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

    어느 교회가 건물을 잘지어 놓고 하나님이 진정 기뻐하시는 사명을 감당하기로 온성도들이 마음을 새롭게 하고 결단하였습니다 .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 예배실 강대 카페트 색깔을 무엇을 정할 것인가를 놓고 교인들의 의견이 둘로 갈라졌습니다 . 한편은 붉은 색을 하자는 소위 ‘ 주의 보혈파 ' 또 다른 한편은 푸른 색을 하자는 소위 ‘ 푸른 초장파 ' 가 나뉘어 다투다가 결국 교회가 갈라지고 말았답니다 . 목회자들의 모임에서 전해들은 이야기라 사실 여부를 확인할수 없습니다 . 그런데 그냥 웃어넘기기에는 어딘지 씁씁한 이야기입니다 . 어처구니 없는 일이라 여겨지지만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저와 여러분 오늘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삶에 자리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

    질문을 하나 드립니다 . 혹시 여러분에게는 어떤 그림자사명이 있으신가요 ? 스스로에게 한번 질문해보십시오 .

    누군가의 그림자사명을 구별해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 자기 자신과 하나님만이 알기 때문입니다 . 왜 그림자사명인지 아시겠어요 ? 그림자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내 발 끝에 붙어다니기 때문입니다 . 내가 가진 본래의 사명이 시들해지고 방향을 잃고 포기되어질 때 나의 그림자사명은 스물스물 고개를 쳐들게 됩니다 .

    저는 아시다시피 목사입니다 . 하나님이 제게 목사로서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고 설교하고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을 이땅가운데 전하는 사명이 제게 있습니다 .

    그런데 과연 제 사명을 생각하면서 동시에 저의 그림자사명이 무엇일까 묵상해봤습니다 . 깊은 묵상을 할 필요도 없이 바로 저 자신의 그림자사명이 무엇인지 알수 있었습니다 .

    그것은 인정받는 것입니다 . 소위 모태신앙이었습니다 . 교회에서 자라다시피 했습니다 . 성경암송도 잘해서 칭찬받고 찬양인도도 잘하고 성경퀴즈박사에다가 청소년부 청년부 임원으로 교회학교교사 성가대로 봉사하면서 영훈이 제는 정말 신실해 , 신앙이 좋아 이런 소리를 듣는 것을 즐겼던 것 같습니다 . 솔직히 목사가 되고도 정말 주옥같은 설교 감동적인 설교를 해서 성도들의 가슴을 주체할수 없는 감격으로 먹먹하게 해야지 그래서 좋은 설교자로 인정받았으면 하는 유혹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습니다 . 노력하는 일이 잘못되었음을 말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 단지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고자 함이 아니라 사람을 의식하고 사람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것이 바로 저의 그림자사명입니다 . 이 그림자사명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점을 솔직히 고백합니다 .

    성경은 본래 하나님이 주신 사명과 거짓되고 왜곡된 그림자사명의 갈림길에 섰던 많은 사람들을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 어떤 사람들은 이 그림자사명에 속아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고 자신의 의와 영광만을 추구하며 살아갔고 어떤 이들은 자기의 영광과 의를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본래의 사명에 충실한 삶을 살면서 그림자사명을 극복했습니다 .

    그 면면을 일일이 소개하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 할애되어 있어서 오늘은 바로 돌직구처럼 그림자사명과 대결을 벌이신 한 분을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

    예 ! 그분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

    오늘 본문말씀에서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가 주신 인류구원의 사명을 감당하기 바로 직전 마귀에게 시험을 당하십니다 . 돌로 떡을 만들라는 유혹 , 성전꼭대기에서 떨어져 신적인 위엄을 보이라는 유혹 , 세상의 모든 영광과 영화를 얻을수 있는 기회 ( 단 마귀에서 절하는 것으로 ) 에 대한 유혹이었습니다 . 간단히 요약해보면 예수님께 굶주림없이 고통없이 반대없이도 메시야가 될 수 있다 . 일부러 그 힘들고 고통스러운 십자가 질 필요가 있니 ?

    예수님에겐 분명 이것이 그림자사명이었습니다 . 그러나 본문은 예수님께서 그 어떤 유혹에도 반응하지 않으셨습니다 . 예 ! 결코 그림자사명에 굴복하지 않으셨습니다 .

    만약 예수님이 이 그림자 사명에 굴복했다면 십자가도 없고 부활도 사라지고 구원과 영생의 소망도 모두 사라졌을 것입니다 . 예수님은 하나님아버지께서 주신 본래의 사명 , 십자가를 향해 흔들림없이 나아가셨습니다 .

    그런데요 .. 여기서 예수님의 그림자사명에 대한 유혹이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음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

    오늘 본문과 병행구절인 누가복음 4 장 13 절에서 마귀가 잠시 물러갔고 숨어서 다음기회를 노렸다 ...( 메시지 ) 는 기록이 나옵니다 . 이 말씀은 이후에도 예수님은 십자가의 사명을 포기하고 쉬운길 힘있는길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명예롭게 살 길을 선택하라는 그림자사명의 유혹을 지속적으로 틈틈이 받았다는 것입니다 .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자신이 잡혀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을 것을 말씀하셨을때 제자들이 그럴수 없다고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부정하는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뭐라고 하셨습니까 ? 사탄아 네 뒤로 물러가라 .

    또한 십자가를 앞에두고 홀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예수님은 순간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소서 . 심지어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을때도 사람들은 예수님을 조롱하면서 네가 만약 메시야라면 그냥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했습니다 . 그러나 그림자사명의 유혹이 손짓할때마다 예수님은 "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 였습니다 . 즉 나로 하여금 그림자사명에 넘어가게 두지 말아달라는 기도를 아버지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 그리고 오직 " 아버지의 뜻대로 ", 다시말해 아버지이신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사명 즉 모든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의 길을 걸어갈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셨던 겁니다 .

    예수님의 이 기도는 바로 하나님주신 본래의 사명과 그림자사명을 가르는 명확한 기준을 보여줍니다 . 내가 높아지고 나의 뜻이 앞서는 것이 그림자사명인 반면 하나님 높아지고 하나님의 뜻이 앞서는 것이 본래의 사명입니다 . 아무리 의미있고 가치있는 선한 일을 하더라도 그 영광을 자신의 받게 되면 그림자사명에 충실했다는 증거입니다 .

    헨리나우엔은 세상의 길 그리스도의 길이라는 책에서 세상의 길은 상향성을 충동으로 살아가는 삶을 말하고 그리스도의 길은 하향성의 방향을 가지고 사는 삶이라고 했습니다 .

    오늘 세상을 사는 모든 그리스도인과 그리스도공동체는 하나님을 높이고 자신은 세상가운데 한없이 낮아져 섬기는 거룩하고 고귀한 사명과 자신만을 높이고 끝도없는 욕망의 탑을 쌓아가려는 그림자사명의 갈림길에 방황하고 있습니다 . 이 방황을 끝낼 힘은 우리 자신에게 없습니다 .

    솔직히 우리의 힘만으로 능력만으로 결단만으로 세상의 그림자사명과 맞서 싸우기란 역부족입니다 .

    그러나 우리가 절망할 이유는 없습니다 . 왜냐하면 이 싸움에서 이기신 분이 저와 여러분 가운에 계십니다 .

    주님께서는 손쉽게 메시야가 되라는 그림자사명을 물리치셨습니다 , 그리고 고난의 길 십자가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심으로 아버지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구원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셨습니다 .

    오늘도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 맡겨주신 본래의 사명의 자리를 잘 돌아보십시다 . 저는 목사로 여러분들은 의사로서 또는 간호사로서 선생님으로서 직원으로서의 하나님이 허락하신 그 사명의 자리를 잘 지켜가시는 은혜와 복이 넘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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