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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01일 말씀

등록일자
2014-10-01
  • 2014년 10월 01일 채플 말씀 영상

    예수님께서 베다니 마을에 가신 이유 (요 12:1~2)


    여러분은 여러분에게 기회가 주어졌을 때 어떤 곳을 자주 찾게 됩니까?
    아마 그런 곳이 있다면 틀림없이 그 곳은 편안한 곳일 것입니다.
    마음에 부담을 느끼지 않는 곳이거나,
    여러분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곳이거나
    그것도 아니면 아마 여러분들이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곳일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향을 좋아합니다.
    좋은 일이 있어도 울적한 일이 있어도 고향 생각을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고향은 편안합니다.
    사랑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부모님이 계시고,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가족 만나는 기쁨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보고 싶은 분들이 그곳에 계시기 때문일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들 보두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입니다.
    서울에서 자란 사람들도 옛 모습을 잃어버린 시가지를 바라보면서 가끔은 향수에 젖어 보기도 하실 것입니다.

    베다니 마을!
    예루살렘에 올라오신 예수님은 언제나 베다니 마을을 찾으셨습니다.
    베다니(Bethany)라는 말은 “슬픔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예루살렘 남쪽 3Km지점(요11:18), 감람원이라는 산자락에 있는 이 마을은
    마르다, 마리아, 나사로 삼남매의 집이 있는 마을이었으며(요11;1),
    문둥병자 시몬의 집(마26:6)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곳도 바로 이곳이었습니다(눅24:50).
    예수님은 이곳 나사로의 집을 방문하기도 하셨으며,
    문둥이 시몬의 집에 들러 식사도 하셨습니다(마26:6, 막14:3).
    베다니에서 주무시기도 하셨고(마21:17, 막11:11-12),
    이 땅을 떠나시기 전에는 이곳에서 바로 축복하셨습니다(눅24:50).

    그렇습니다.
    주님은 예루살렘에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그래서 더 더욱 고향과 같은 베다니 마을을 찾으셨을 것입니다.
    우리 병원은 베다니 마을가 같은 병원이 되어야 합니다.
    베다니 마을 같은 우리 동네. 베다니 마을 같은 우리들의 심령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이 사랑하시는 곳!
    주님이 자주 찾으시던 그 곳!
    주님이 예루살렘에 오시면 늘 머무셨던 그 베다니 마을!
    우리 주님이 베다니 마을을 좋아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베다니 마을은 주님이 필요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와 나사로 가족은 누구보다 주님의 도움이 필요한 가정이었습니다.
    마르다는 아둔한 여자였습니다.
    예수님이 오셨음에도 말씀 듣기보다는 음식 준비에 바빴던 여자였습니다.
    손님이 오면 음식 준비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선순위를 잊어버리고
    심지어는 말씀 듣는 마리아까지도 꾸짖어 달라고 부탁하던 여인입니다.
    사실 이런 사람일수록 주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마리아는 더욱 그렇습니다.
    성경에 워낙 여러 명의 마리아가 등장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설이 있습니다만
    정확하지는 않습니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미루어 짐작합니다.
    아마 대낮에 간음하다 잡혀 온 여인이 바로 나사로의 동생 마리아일 것으로 봅니다.
    그 이유 오빠는 병들어 생활력이 없고,
    언니는 아둔하여 집안일 밖에는 모릅니다.
    그래서 온 가족을 부양하여야 할 마리아는 어떤 다른 방법이 없었기에
    한 낮에도 나가서 잘못된 방법으로 돈을 벌지 않을 수 없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물론 다른 마리아도 예수님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는 아들인고로 예수님이 있어야 했고
    부자였던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 들린 적이 있어서 사랑으로 구원을 받았고
    그래서 그녀는 자기의 재산으로 주님을 섬겼던 것으로 봅니다(눅 8:2-3).
    그 외에도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였던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마가 요한의 어머니인 마리아도 있습니다만
    그러나 베다니의 마리아는 어느 누구보다도 예수님이 필요한 사람이었습니다.
    정말 이 여자야 말로 그냥 버려두었다면 돌에 맞아 죽었을 것입니다.

    나사로는 또 어떻습니까?
    죽은 지 3일이나 지나 냄새가 나던 그였습니다.
    더구나 주님은 베다니의 나병 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를 하였습니다.
    이 시몬이야 말로 주님이 꼭 필요한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우리들이야 말로 영적인 나병환자들이 아닙니까?
    육체적인 병보다 정신적인 영적인 문둥병이 더 무서운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필요한 우리들입니다.
    베다니 마을은 주님이 필요한 마을입니다.

    지금 한국은 주님이 필요합니다.
    지금 서울은 주님의 도우심이 필요한 도시입니다.
    지금 한국 교회는 정말 주님이 필요합니다.
    사람이 주인이 되고
    인간이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는 것처럼
    예수님은 거절하고, 푸대접하고, 반대를 하고, 내쫓기까지 하는 지금이지만
    사실은 꼭 필요하신 분이 우리 주님이십니다.
    주님은 주님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먼저 찾아오십니다.
    그래서 하늘 영광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거절했습니다.
    푸대접을 했습니다.
    반대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아버렸습니다.
    죽였습니다.
    지금도
    지금도 그렇게 하기를 원하고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정말은 꼭 필요한 사람들이 그렇게 합니다.
    찾아오시는 주님을 기쁨으로 맞이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 베다니 마을은 순수하고 순진한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기 전에 두 사람을 베다니 마을로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귀 새끼를 풀어오게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베다니 마을로 갔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나귀새끼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새끼 나귀를 풀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던 사람이 묻습니다.
    “왜 나귀새끼를 풀어 갑니까?”
    제자들이 대답합니다.
    “주님께서 쓰실 겁니다.”
    여기서 말하는 주님은 예수님만을 지칭하는 용어가 아닙니다.
    일상적으로 쓰는 용어입니다.
    요즘말로 하면 “우리 선생님이 쓰시려고요.”
    그 사람은 아무 말 없이 허락합니다.
    필요한 사람이 쓰는 것일 줄로 믿고 그냥 풀어 가도록 버려둡니다.
    이것이 바로 베다니의 인심입니다.
    이 나귀새끼가 바로 우리 주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 타고 가신 나귀새끼입니다.

    베다니 마을 사람들은 순수했습니다.
    순진했습니다.
    필요에 따라 나누어주기도 하고
    예루살렘 변두리 마을에서 어렵게 사는 가난한 사람들이었지만
    서로 믿고 의지하며 편하게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주께서 쓰시겠다는 한 마디 말에 나귀새끼까지 쓸 수 있는 마을이었습니다.

    주님께 함께 하시기를 원하십니까?
    베다니 사람들처럼 순수하고 순진해야 합니다.
    세브란스의 정신을 기억해야 합니다.
    세브란스와 에비슨 선교사의 순수함과 순진함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셋째, 베다니 마을은 정말 주님을 극진히 사모하였습니다.

    쉬운 말로 하면 주님을 정성을 다해 모시는 사람들이 베다니 사람들입니다.
    더 쉬운 말로하면 예루살렘 사람들과 달랐습니다.
    베다니 마을도 예루살렘의 주변 마을입니다.
    그러나 그들과는 달랐습니다.
    순수하고, 인정이 넘치고, 서로를 사랑하되 정말 주님을 사모하는 사람들입니다.

    베다니에는 정말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주님을 사랑합니까?
    은혜를 입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정성을 다해 주님을 섬깁니다.

    주님이 오시자 온 동네가 모여 잔치를 합니다.
    요한복음 12장 1-2절을 보시면 직접적인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때는 유월절 엿새 전이었습니다.
    베다니 주님이 오시자 잔치를 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14장 3절에는 그 장소가 나병환자 시몬의 집이었다고 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이 잔치 자리에서 한 여인이 옥합을 깨뜨립니다.
    마가복음에는 “한 여인”이라고 기록하고 있고 요한복음에는 마리아라고 이름을 거명합니다.
    베다니에 사는 마리아였을 것입니다.
    물론 막달라 마리아라고 추측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간음하다 잡혀 온 여인이건
    일곱 귀신 들렸던 마리아이건 간에
    은혜를 입은 사람입니다.
    주님을 섬기는 사람입니다.
    정성을 다해 섬겼습니다.
    마리아는 베다니에서 예수님 앞에서 옥합을 깨뜨렸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체험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들!
    그들은 주님을 사랑합니다.
    말씀을 듣기 위하여 무릎 앞에 바짝 다가앉았습니다.

    나사로가 죽었을 때 마르다와 마리아, 예수님과의 대화 장면을 상상하시기 바랍니다.
    오누이처럼 친근한 이들의 대화가 이들이 관계를 이야기합니다.
    옥합을 깨뜨린 여인
    죽었다가 산 사람,
    기적과 치유의 경험을 가진 그리스도를 사모하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베다니 마을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베다니 마을에서 능력을 나타내셨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고,
    함께 식사를 나누시었습니다.
    병든 자를 고치시며,
    사랑을 베푸시며,
    이곳에 머무시는 것을 좋아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베다니 마을 사람들을 사용하셨습니다.
    심지어 예루살렘 입성을 위하여 나귀새끼까지 사용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베다니 마을 사람들을 축복하셨습니다.
    마지막 승천하시는 순간까지 베다니에서 축복하셨습니다.

    베다니 마을 사람들과 같이 우리들은 주님을 사모합니다.
    순수한 믿음으로 순종합니다.
    정성을 다해 주님을 섬깁니다.
    주님이 좋아하시고 고향 같은 마음으로 늘 머무시기를 원하시는 병원!
    베다니 마을과 같은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베다니 마을가 같은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저는 알렌 선교사 입국 130년을 맞으면서
    우리 교회와 병원과 학교에
    알렌이 추구하였던 베다니의 정신, 변두리의 마을인 베다니의 마음이
    우리 모두에게 나타나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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