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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4월 08일 말씀

등록일자
2015-04-14

2015년 04월 08일 말씀

이수영 목사

복음전도와 치유사역

( 눅9:1-6 )

 

열두 명의 제자를 불러 모으신 예수님께서는 최측근으로 항상 동행할 제자들의 수를 다 채우셨다는 듯이 그들을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전하라고 내보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그냥 내보내시지 않고 그들에게 놀라운 능력과 권위를 주시며 내보내셨습니다. 그것은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본문 1절)였습니다. 반면에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나 배낭이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 벌 옷 같은 것은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본문 3절). 허긴 모든 귀신을 제어하고 모든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지닌 제자들이라면 지팡이나 배낭이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 벌 옷 없는 것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전도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제자들에게서 지팡이나 배낭이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 벌 옷 같은 것이 없어서 고생했다거나 불편했다는 보고는 전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저 그들이 두루 다닌 마을마다 병자들이 낫고 귀신들이 쫓겨나갔다는 보고뿐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그렇게 내보내심으로써 전도는 돈이나 물질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그것을 믿는 믿음과 하나님께서 능력을 나타내주시기 구하는 간절한 기도로 하는 것임을 확실하게 가르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나가서 각 마을에 두루 다니며 곳곳에 복음을 전하고 귀신들을 쫓아내며 병을 고쳤다는(본문 6절) 소문은 곧바로 갈릴리의 분봉 왕 헤롯에게 전해졌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행한 모든 일을 들은 헤롯은 심히 당황했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들이 예수님을 가리켜서 말하기를 세례자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눅9:7). 세례자 요한의 목을 베어 죽게 한 장본인인 헤롯이었기 때문에 심히 당황할만했을 것입니다. 그는 말하기를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거늘 이제 이런 일이 들리니 이 사람이 누군가?” 하며 예수님을 보고자 했습니다(눅9:9).

예수님이 누구이십니까? 오늘 본문이 준비한 답은 “영육 간의 구원자”시라는 것입니다. 눅4:43에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노라.” 하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신 목적이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것임을 분명히 밝히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세상에서 사시는 동안 행하신 일은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전하시는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복음을 전하시면서 동시에 귀신들린 자들에게서 귀신들을 쫓아내셨고 온갖 병든 자들을 고쳐주셨으며 때로는 죽은 자까지도 살리셨습니다. 혼인잔치에 온 하객들에게 대접할 포도주가 떨어져 당황하고 있었을 혼주에게는 물로 포도주를 만드셔서 손님들을 대접하게 하심으로써 난감한 상황으로부터 헤어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빈들에서 먹을 것이 떨어져 굶게 된 수많은 백성을 배불리 먹이기도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수많은 백성에게 먹이신 것은 육의 양식만이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영의 양식을 먹이신 것입니다. 수많은 백성이 배고픔도 잊고 빈들에까지 예수님을 따라다닌 것이 다름 아닌 그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백성의 영적 굶주림을 해소시켜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육신의 병을 고쳐주실 뿐 아니라 영적인 병인 죄의 사하심을 선언하기도 하셨습니다(막2:5). 하나님의 나라와 그 복음을 전하며 또한 그를 따르는 사람들의 병도 고치시고 삶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신 예수님이십니다. 그에게서 복음전도와 치유사역은 함께 가는 일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영육 간의 구원자시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하나님나라의 복음전도와 세상 치유의 사역을 혼자서만 행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의 제자들에게도 같은 사명을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이 그 사실을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그들을 내보내셨습니다(본문 1-2절).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단지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만을 주신 것이 아니라 “모든 귀신을 제어하는” 능력과 권위를 주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신체적인 병들뿐 아니라 심리적인 병이나 정신적인 질환이나 영적인 병까지도 다 고칠 수 있도록 모든 귀신을 제어하는 능력과 권위를 제자들에게 부여하셨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나가 각 마을에 두루 다니며 곳곳에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치며(본문 6절) 귀신들을 내쫓았습니다(눅10:17, 20).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행하신 전도와 치유의 사역을 이어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행하셨고 그의 제자들도 행한 그 전도와 치유의 사역은 예루살렘 초기 교회로부터 오늘날 이 땅의 교회에까지 물려져 내려온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와 그 지체들인 그리스도인들이 힘쓸 일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즉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마땅히 그리스도께서 지상에서 행하신 일들을 계속해서 수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나라의 소망을 심어줄 뿐 아니라 이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며 나누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따르느라 굶주린 무리에게 먹을 것을 주시기로 작정하시고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눅9:13)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예수님의 지시를 따랐을 때 남자만 해도 오천 명 정도가 되는 무리 전체가 배불리 먹고도 그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차는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교회가 곧 세상을 영육 간에 구원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영육 간에 세상을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의 도구로 쓰임 받는 것이 교회가 힘쓸 일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목을 베게 한 분봉왕 헤롯은 반교회적인 세상의 상징적 대변자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행한 일들은 결과적으로 헤롯을 긴장시켰고 그로 하여금 예수님이 누구인지에 대한 물음과 함께 그를 보고자 하는 동기를 부여했습니다. 오늘날 교회도 세상을 긴장시키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관심과 그를 만나고자 하는 동기를 유발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교회가 힘쓸 일입니다. 세상을 긴장시키지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면 교회는 그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땅의 교회는 오히려 세상이 교회가 하는 일에 무감각해지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무관심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세상을 당황해하게 만들고 예수가 누구인지 묻게 만들기 위하여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전하는 일과 더불어 사람들의 병과 배고픔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일을 더욱 더 힘써야 할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지금 영적으로 중병에 걸려있습니다. 특히 우리 국민을 힘들게 한 영적 질병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배금주의라고 봅니다. 작년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사건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어느 때나 마찬가지이지만 작년에 일어난 사건들도 대부분은 돈 때문에 생긴 일들입니다. 돈을 좋아하고 많은 돈을 벌고자 하는 의지 자체를 나쁘다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과, 그래서 더 빨리 더 많은 돈을 벌어야겠다는 욕심 때문에 부당한 방법으로 부당한 이익을 취하려고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이러한 배금주의가 낳는 치명적인 결과는 생명경시풍조이고 안전불감증입니다. 불량부품 납품이니 안전검사 소홀이니 부실공사니 뇌물수수니 하는 것들이 다 그래서 저지르는 일들입니다. 그 결과는 대형 인명피해사고들로 나타나는 것은 뻔한 이치입니다.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영적 질병은 가진 자들의 특권의식입니다. 돈을 가진 자들뿐 아니라 권력이나 어떤 형태든 우월적 지위를 가진 자들의 특권의식과 그 특권적 지위를 악용하여 행사하는 폭력이나 횡포입니다. 소위 “갑질”이라는 것입니다. “을”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강압하며 희롱하고 탈취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갑질”은 공공기관이나 학교나 군대나 일반 직장이나 할 것 없이 어디서나 자행되고 있습니다. 일부 병원에서도 행해지고 있다는 보도도 있습니다. 중소기업이나 하도급업체나 대리점들을 상대로 하는 대기업들의 횡포나, 일부이지만 정치인들이나 검찰의 고위공직자들이나 군대에서의 상급자들이나 대학교수들의 성적 일탈행위가 줄지어 일어나는 것도 다 이 특권의식과 그 지위를 이용하여 채우려는 탐욕 때문인 것입니다.

 

이렇게 지금 우리 사회는 구석구석 심하게 병들어있습니다. 온갖 거짓과 부정부패와 비리가 척결되기는커녕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으며 불신과 갈등과 대립은 해소되지 못하고 더욱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윤리도덕이 무너지고 있고 곳곳에서 폭력이 난무하며 퇴폐하고 해악스러운 문화가 어린 아이들에게까지 만연되어 있습니다. 돈을 사랑함이 도를 넘고 이에 비례해서 생명경시풍조와 안전불감증도 팽배해졌습니다. 거의 모든 영역에서 비정상이 정상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정상을 밀어내고 있습니다. 중병에 걸린 사회입니다. 치유가 절급한 상황입니다. 모두가 귀신들린 것 같고 군대귀신에 사로잡힌 것 같습니다. 거라사인의 땅에 예수님께서 찾아가신 것처럼 이 현대판 거라사인의 땅에 교회의 발길과 치유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교회에 주어진 전도와 치유의 사명을 치열하게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될 때입니다.

 

그런데 전도와 치유의 사명을 수행하려 할 때 우리가 유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전도와 치유의 사역을 위해서는 적절한 교육과 훈련도 필요하고 예산상의 지원도 필요하지만 그것 못지않게, 아니 그 무엇에 앞서 중요한 것은 기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전하며 병을 고치라고 제자들을 내보내실 때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나 배낭이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 벌 옷 같은 것은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말라 하셨습니다(본문 3절). 왜 그러셨겠습니까?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나라의 일을 하며 사람의 힘이나 물질적 준비상태에 의존하려하지 말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시려는 뜻이었다고 봅니다. 아무리 제자들이 귀신을 제어하고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받았다 해도 막상 처음으로 주님과 동행하지 않고 둘씩 둘씩만 짝지어 사람들을 찾아 나설 때 그들은 매우 두려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랬을 때 정말 귀신들이 쫓겨나고 병들이 낫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세 제자만 데리고 산에 올라가시고 나머지 제자들에게 어떤 사람이 귀신 들린 아이를 데리고 와서 귀신을 내쫓아달라고 했을 때는 그들이 그 아이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고 쩔쩔맨 일이 있습니다. 그들에게로 돌아오신 예수님께서 나중에 그들에게 하신 말씀은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다”(막9:29)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제자들이 기도하지 않고 그 아이에게서 귀신을 쫓아내려 했기 때문에 실패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제자들의 이 실패를 우리 자신의 사역을 위한 귀한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고 행하려는 모든 일은 실패할 수 있음을 가슴 깊이 새기고 매사에 간절히 기도하며 임해야 할 것입니다.

 

연세대 의료원은 이제 세계적인 병원입니다. 그런데 연세대 의료원이 추구해야 할 것은 의술의 수월성만이 아니라 다른 병원들과의 차별성입니다. 연세대 의료원이 추구하고 지키려고 힘써야 할 차별성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며 역사하시는 병원이 되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고 스스로 귀신을 내쫓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달려들었다가 보기 좋게 실패한 예수님의 제자들의 과오를 반복하지 말아야 합니다. 분명한 신앙과 확고한 소명감의 바탕 위에서 영육간의 전인적 치유사역을 잘 수행하는 연세대 의료원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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