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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위암 정복의 꿈, 노성훈 교수

등록일자
2012-04-01
  • 위암 정복의 꿈, 노성훈 교수

    대한민국 암 사망률에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위암.
    위암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하게 발생하는 질환으로 1983년부터 지금까지 암 발생률 1위를 놓친 적이 없다.

    위암입니다.
    또 한 번의 위암 선고가 내려졌다. 삶과 죽음 사이, 그 공포 속에 움크린 사람들.
    성공도 못 해보고 한참 일할 나이에 왜 이 병이...술담배도 안 하는데...
    왜 이 병이 나한테 왔나?....약간 야속한 생각도 들더라고요.
    정말 암 선고 받았을 때는 다시 살 수 있을까? 이런 걱정했는데.....
    걱정하지 마세요. 잘 되실꺼에요.
    차가운 수술실로 들어가는 환자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는 노성훈 교수
    위암 수술의 대가, 노 교수의 손이 환자에겐.... 마지막 희망이다.

    위암 정복의 꿈, 노성훈 교수

    수술이 시작됐다.
    한 해 600여 명의 환자를 수술하는 노성훈 교수는 세계에서 위암 수술을 가장 많이 한 의사로 꼽힌다.
    1983년 전문의가 된 이후 지금껏 수술한 환자만 8000여 명.
    하지만 그는 '위 8000개를 수술했다'는 수치적인 기록보다 수술에서 얻은 데이터와 조직을 이용한 위암 정복에 의미를 둔다.
    늘 환자의 입장에 서서 고민하는 의사, 노성훈 교수는 위암 수술의 새 지평을 열었다.
    노 교수의 새로운 위암 수술 기법 중 하나는 위암 수술의 모든 과정을 칼 대신, 전기소작기를 이용해 신속하게 수술한다는 것이다.
    짧아진 수술시간에 출혈도 없으니 환자의 회복은, 당연히 빨라졌다.
    전기소작기를 이용한 림프절 절제술은 1990년 노 교수가 시작해 방법을 발전시켰으며 이후에 많은 국내외 학회에서 발표함으로써 이제는 국제표준이 됐다.
    또한 노 교수는 수술자가 묶고 보조자가 자르던 기존 방법을 탈피해 두 사람이 동시에 타이를 하는 방법을 시행함으로써 수술시간을 앞당겼다.
    메스에 이어 노성훈 교수는, 고름과 가스를 배출하기 위해 수술 후 환자가 의례히 달아야 했던 콧줄과 심지도 과감히 없앴다.
    코와 옆구리에 호스를 달고 고통스러워하는 (환자의) 모습에‘환자의 고통을 더는 방법은 없을까?’라는 질문을 노 교수 스스로에게 던진 결과였다.
    이 밖에도, 15cm 최소한의 개복으로 노 교수의 환자들은 긴 수술상처를 갖지 않는다.
    진행성 위암의 치료에 있어서도 노 교수는 적극적이고 광범위한 수술을 원칙으로 삼았다. 기존에는 수술조차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고도로 진행된 위암 환자들까지도 높은 생존율을 보장했다.

    수술 후 사망률 0.4%, 5년 생존율 76.7%라는 국제적으로도 유례없는 노 교수의 수술 성적에 한국을 찾는 외국 의료진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위암 수술 세계1위, 노 교수만의 수술법을 배우기 위해서다. 과거 우리나라 의료진이, 의술을 배우기 위해 선진국으로 떠났던 것과는 상반된 일이다.
    노선생님은 수술의 안전성 그리고 수술 후 환자가 퇴원하는 기간이 매우 짧다는 면에서 세계 최고입니다. 그리고 수술하는 방법과 해부학적 구조를 잘 아시고 수술을 하면서 트러블이 없으세요. 저는 노선생님이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제일 뛰어나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제가 위암에 걸린다면 노선생님께 수술을 부탁하겠습니다.

    노성훈 교수가 외래 진료를 보는 날엔 복도 앞에 위암 환자들과 가족들로 발디딜 틈도 없다.
    하루에도 수많은 환자를 만나는 노교수지만 어느 환자 하나 소홀히 할 수가 없다.
    하루에 한 10명에서 15명 정도가 초진으로 오시는데 미국에서도 오시고 멀리 외국에서도 오시는 분들도 있고 전라도, 경상도, 제주도 가리지 않고 다 오시는 편이세요.

    숨가쁘게 돌아가는 일정 속에 노성훈 교수가 강의실을 찾았다.
    후학 양성을 위한 자리에도, 노 교수의 열정은 이어진다.
    젊은 후배들에게 끊임없는 도전과 ‘의사의 길이, 사람을 위한 길’임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외과가 힘들다고 하는데 즐겁게 수술하고 즐겁게 일하시는 걸 보면 나도 이분 옆에 있으면 힘든 일도 즐겁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환자들한테 존재만으로도 큰 용기가 되는 걸 보고 많이 배우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병원, 강의실에 이어 노성훈 교수가 찾은 곳은 3평 남짓한 그의 연구실이다.
    전통적인 위암 수술법 대신, 새로운 수술 기법으로 위암 수술과 치료에 혁신을 이룬 노 교수의 논문들이, 바로 이곳에서 나왔다.
    세계가 인정한 수많은 논문들, 그 중, 위암 관련 국제논문 160여 편은 노 교수의 끊임없는 도전정신에서 나온 성과였다.
    세계가 한국을, 그리고 노성훈 교수를 주목한 가운데 2011년, 위암분야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국제위암학술대회가 서울에서 개최됐다.
    조직위원장을 맡은 노 교수의 2년여의 준비가 빛을 보는 순간이었다.
    전세계 57개국, 2,000여 명의 위암 전문가가 참가한 역대 최대 규모, 논문 역시 기존대회 2배에 가까운 1200여 편이 발표됐다.
    이 자리에서 노성훈 교수는 세계위암학회장으로 선임됐다.
    이후 노 교수는 서구에서도 낮은 생존율을 보이는 위암에서 표준화된 수술과 치료방법을 제시했고 이는 곧, 세계 위암환자의 생명과 복지 향상으로 이어졌다.
    노성훈 교수의 진료 철학은 늘 환자의 입장을 이해하고,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것.
    위암 수술과 관련된 수많은 도전들이 바로, 이 진료 철학에서부터 시작됐다.
    노 교수는, 끊임없이 환자에게 무엇이 불편한지를 묻고 또 묻는다.
    그의 가슴이, 환자를 향해 뜨겁게 열려있기 때문이다.
    환자들 역시, 노 교수를 전적으로 믿고 의지한다.
    의사와 환자의 관계를 뛰어넘은 굳건한 신뢰로 이어진 ‘인생의 파트너’기 때문이다.
    노성훈 선생님 얼굴하고 그 음성 ‘괜찮아요. 평안하시죠?’ 정말 따뜻한 선생님이세요. 내가 이 땅에 살아 있는 날까지 선생님을 잊으면 안 되죠.
    직접 찾아오셔가지고 어떠시냐고 물어보시고 아버지같이 포근하시고 엄청 좋으신...

    노 교수가 세부전공을 선택하던 시절, 위암은 한국인에게 제일 많은, 그리고 열에 한 명은 수술도 못 해보고 죽는 대표적인 암이었다.
    젊은 의학도였던 그는‘열악한 분야이니만큼, 내가 해야겠다’는 사명의식으로 위암을 전공으로 선택했다.
    그 사명의식은, 조금도 빛바래지 않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생명을 향한 끊임없는 도전은, 곧, 위암 수술 ‘최고 생존율’라는 기록을 낳았다.
    이 모든 것은, 노 교수가...환자와 병마를 이겨나가는 동반자로써 환자와 눈높이를 맞췄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빼어난 의술에, 따뜻한 인술까지 더해진 그가 바로, 이 시대의 명의, 노성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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