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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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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운서 손범수> 세브란스와 동행합니다.

등록일자
2012-07-03

이 기쁨을 더 많은 이들이 알 때까지..

벌써 1년, 아니 20년. 아나운서 손범수가 나눔 활동을 펼쳐온 시간이다. 갓난아이가 대학생이 될 만큼 많은 게 변하는 시간이지만, 나눔에 관한 한 그는 한결 같았다. 기부나 봉사활동 등 직접적인 나눔활동을 꾸준히 펼쳐왔고, 나눔 전도사가되어 사회 곳곳에 나눔바이러스를 퍼뜨려왔다. 그리고 얼마 전, 왕성한 활동을 펼치던 그가 또 하나의 나눔을 활동 목록에 더했다. 세브란스병원 후원의 밤 행사에서였다.

권승재 사진 손준석, 세브란스병원


세브란스와의 인연과 후원에 대한 견해를 말하는 손범수 아나운서

비현실이 현실이 되는 순간을 위해 존경스럽긴 한데, 가까이 하기에는 어려울 것 같은 사람이 있다. 아마 대중에 비춰진 손범수의 이미지가 이와 같지 않을까. 평범한 사람은 한 번 하기도 어려운 나눔을 셀 수 없이 실천하는 사람.

게다가 여러 단체의 홍보대사까지 맡아가며 깊이관여하고 있다. 보통 사람이 그의 활동을 보고 ‘비현실’을 떠올린다한들,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역으로 이런 질문을 던지면 어떨까. 그동안 우리가 나눔에 익숙하지 않았고 실천하지 않았기에 조그마한 실천에도 놀라는 건 아닐까?

그동안 우리의 현실에 나눔이 존재하지 않았기에, 그의 모습을 두고 비현실을 떠올리는 건 아닐까? 이런 풍토는 손범수가 나눔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선 계기였다. 시작은 20년 전. 91년 즈음 유니세프에서 근무하던 한 선배에게서 유니세프와 부산시, 하얏트 호텔에서 공동으로 주최한 ‘사랑의 장터’의 사회를 보면 어떻겠느냐는 권유를 받았을 때였다.

“손범수 아나운서가 유명한 사람으로서 이런 일들을 알리면 더 좋은 일 아니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는 흔쾌히 응했다. 그에게 주어진 아나운서라는 직업은 단순히 생계를 위한 노동수단이거나, 이름을 알리기 위한 수단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눔을 말하는 손범수 아나운서

“대여섯 살 쯤 되는 아이가 갓난아이를 업고 구걸하는데, 이 아이들을 보면서 이 사회가 앞으로 해결해야 할 숙제가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직업에 관한 제 가치관이랄까요? 저는 크리스천인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이웃을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따르는 거죠. 그러려면 물론 제 직업을 통해서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방송활동을 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기도 하고, 제게 주신 탤런트로 그분의 말씀을 실천하는 거죠. 조금이라도 이름을 알릴 수 있는 이 직업을 통해 어려움을 알리고 사회가 좀 밝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랄까요. 오늘 녹화한 <폭력 없는 학교>(EBS)의 경우에도 좀 더 폭력 없는 세상이 되는데 작게나마 일조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맡았고요. 유니세프와의 일을 시작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어요.

이런 활동들을 방송인으로서 해가야 할 하나의 미션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후의 활동은 주어진 사명 확장이었다. 뜻에만 맞으면 얼마든지 승낙했다. 20년 전 활동을 시작한 유니세프에서 시작해 글로벌 케어, 다일공동체, 한국여성재단 등 그가 몸담고 있는 단체는 시간이 갈수록 늘어갔다. 나눔 실천 또한 함께 비례해 늘어갔다.

멈출 수 없는 나눔, 알리고 싶은 나눔 ‘한결같다’는 것만큼 지키기 어려운 덕목도 없을 것이다. 20년의 세월이라면 더욱 그럴 터. 게다가 전에 비해 좋아졌다지만, 나눔 문화 또한 정착되었다고 말하기엔 다소 어려운 상황. 지쳐 있어도 이상할 것 없었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아니. 멈출 수 없었다. 두 가지 계기에서였다. 하나는 나눔 활동 중 목격했던 비극적인 현실이었다. “유니세프 활동의 일환으로 한 10년 전쯤 몽골에 봉사활동을 간 적이 있어요. 지금은 몽골이 또 얼마나 변했을지 모르겠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몽골을 대표하는 광장에 아이들이 그렇게 많았습니다.

부랑아쯤으로 부를 수 있겠는데, 집 없이 살아가는 아이들이 구걸을 하는 거예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 아이들이 밤에 어디서 자나 관찰했더니, 몽골이 추우니까 맨홀 뚜껑 열고 들어가 그 밑에서 자더라고요. 그곳이 좀 더 따뜻하니까요. 그렇게 자고 아침에 일어나 다시 구걸을 하는 거죠. 대여섯 살 쯤 되는 아이가 갓난아이를 업고 구걸하는데, 이 아이들을 보면서 이 사회가 앞으로 해결해야 할 숙제가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아이가 기억날 때마다 숙제를 어서 함께 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요.”

또 하나의 계기는 나눔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들이었다. 나눔 활동에 오래 참여한 그였지만, 나눔은 희생으로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오산이었다. 함께 봉사활동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마음은 그의 생각과 달랐다. 도리어 이 활동을 통해 얻는 게 더 많다는 것이었다.

“지금 제가 가진 직함 중에 ‘글로벌 케어’라는 단체의 홍보대사 직함이 있는데, 이 단체와 함께 베트남에 갔을 때였어요. 베트남에는 흔히 언청이라고 불리는 구 순구개열 어린이들이 많거든요. 성형외과 수술이 필요한 아이들이었지요. 처음에 놀랐던 건, 성형외과 하면 주로 미용 쪽으로 접근을 하시잖습니까?

그런데 이 아이들을 치료하기 위해 정말 많은 성형외과 선생님들이 참여하신 겁니다. 그것도 종합병원의 과장급 선생님들이요. 평소에 무척 바쁘셔서 시간도 잘 못 내시는 분들이 여름휴가 기간을 이용해 오신 거죠.

그래서 여쭤봤어요. ‘아니, 시간도 없으신 분들이 휴가도 안 가시고 덥고 불편한 나라에서 봉사활동을 하십니까.’ 그랬더니 웃으면서 답하시더라고요. ‘사실은 저희가 얻는 게 더 많습니다.’ 이 때 나눔이 희생이 아니구나, 정말 얻는 게 있는 거구나, 생각했죠. 큰 감명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는 생각했다. 나누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충만함이 있는 모양이라고. 그리고 시간이 흐른 지금, 그 기분을 알 것 같다고 한다. 이 느낌을 좀 더 많은 분들과 공유하고 싶다고 한다. 그가 나눔 활동에 있어 수많은 단체에 몸담고 박지성 같은 활동량으로 나눔에 매진하고 있는 이유였다.

2011년 세브란스 후원의 밤 행사 진행을 맡았던 손범수 아나운서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도록 그는 수많은 나눔 리스트에 얼마 전 또 하나의 목록을 추가했다. 지난 해 11월에 열린 ‘세브란스 후원의 밤’에서였다. 이날 행사에서 받은 행사비 전액을 세브란스병원 후원을 위해 기부한 것이다.

“많은 분들께서 이렇게 오해를 하세요. ‘아니, 왜 병원에 기부를 하지? 그것도 세브란스처럼 큰 병원에? 그 사람들은 돈 많지 않나’라는 식으로 말이죠. 그런데 알아봤더니 그게 아니더군요. 우선 병세로나 경제적으로나 위급한 환자를 치료하는 데 쓰일 수 있었고, 나아가 기초의학을 연구하는데 생각보다 많은 자금을 필요로 하더군요. 아시다시피 과학이나 기술 분야에서도 후원이 있을 때 더욱 좋은 연구 결과가 있었죠. 의학도 마찬가지였던 겁니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이런 제도가 많이 자리를 잡았는데, 우리나라는 그러질 못했어요. 세브란스병원이 이 문화 정착을 위해 발을 먼저 내딛은 것이고요. 그 얘기를 듣고 나니까 이 제도를 좀 더 효율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겠다 싶었습니다.

이렇게 취지에 공감하고 저도 후원할 방법을 모색했는데, 마침 제 진행비가 예산에 포함이 되어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그 금액을 제게 주지 마시고, 제 명의로 기부하는 데 써 달라고 부탁을 드린 거죠.” 세브란스병원 행사에서도 알 수 있듯, 그의 나눔 활동은 일종의 ‘귀띔’이었다. 한 울타리에 모여 함께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을 알려주는 사람. 여기서 의문 하나. 과연 우리는 이 일들을 알 수 없었기에 실천하지 않았던 걸까? 혹시 알고 있음에도 내 한 몸 챙기기 어려워 애써 외면했던 것은 아닐까?

“예전처럼 한 동네에서 아이를 함께 키울 수 있는 그런 세상이 돌아올 순 없겠죠. 다만 요즘은 다들 혼자 살려는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자기 밖의 세상과 부딪히면 화를 내는 거죠. 함께 살아가는 생각만 하더라도, 많은 게 나아질 겁니다. 그걸 알리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죠.” 그의 말을 듣고 나니, 살기 좋은 세상이 생각보다 멀리 있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브란스병원이 이 문화 정착을 위해 발을 먼저 내딛은 것이고요. 그 얘기를 듣고 나니까 이 제도를 좀 더 효율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
겠다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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